경제·금융

말연:2/저축률 40%대 “기업투자 기폭제”(경제를 살리자)

◎카드소지자에 과세… 「허리띠 졸라매기」 안간힘/다인종국 이점살려 외국투자 적극유치말레이시아는 가만히 앉아서 갖고 있는 자원만 팔아도 연평균 1백억달러 정도는 너끈히 벌어들일 수 있는 복받은 나라다. 고무·원유·LNG·목재 등 풍부한 1차상품 덕분이다. 이렇게 특별한 노력없이도 웬만큼 밥먹을 걱정을 하지 않는 경우 대개 현실에 안주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말레이시아는 이런 부류의 나라들이 쉽게 빠지게 되는 함정을 비켜갔다. 지난해 말레이시아는 국내총생산(GDP) 8.2% 성장, 소비자물가 3.5% 상승, 저축률 39.4%, 무역수지흑자 34억달러, 무역규모 1천7백50억달러, 외환보유고 2백83억달러라는 경제성적표를 과시했다. 인구 2천만명인 나라치고는 무역규모가 꽤 큰 편이고 성장속도도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좋다. 그러나 그들 나름대로 고민도 많다. 요즘 고민은 매년 8%이상의 고성장을 지속하다 보니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소비고급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 고급승용차, 대형가전제품 등 내구소비재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해외 유명브랜드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 것이다. 당연히 과소비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40%에 육박하는 말레이시아의 저축률을 보면 이 걱정이 기우임을 알게 된다. 정책당국은 저축률 하락 가능성을 걱정하기보다 세계 최고수준인 저축률을 더욱 끌어올리기 위해 우리 상식으론 생각키 어려운 정책까지 서슴없이 구사하고 있다. 신용카드 소지자에 대해 1년에 50링기트(20달러, 말레이시아 화폐단위로 1링기트는 0.4달러 수준)를 서비스세로 부과하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는 것이다. 2백만명 수준인 신용카드 소지자들이 과소비를 주도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세금을 무기로 소비억제에 나서겠다는 발상이다. 이같은 소비억제정책에 대해 말레이시아 중앙은행(뱅크 네가라)은 『투자주도형 경제성장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한다. 경쟁국들로부터 「비정상적 과잉저축」이란 소리까지 들을 정도지만 투자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국민들이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한다는 신념은 요지부동이라는 얘기다. 물론 국민들의 의식은 정부를 앞서간다. 회교색채가 강한데 따른 결과겠지만 그들의 소비성향은 의외로 낮다. 안정된 물가 덕분에 저축에 대한 의지도 강하다. 경제 전체적으로 당장 시급한게 산업구조조정이다. 외국인의 자본과 노동에 의한 투자주도형 성장에서 탈피, 생산성 주도형 성장으로 변모해야 한다는 명제를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선 지난해까지 사회간접자본 서비스부문의 민영화프로그램을 가동, 정부주도의 산업구조에 민간이 참여하는 기회를 대폭 늘렸다. 또 지난해 6월엔 중소기업활성화계획을 발표했다.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을 강화하고 기술수준을 향상시킨다는 목표를 담은 이 계획은 말레이시아가 당면한 과제들에 대한 해법의 성격이 강하다. 즉, 중소기업육성정책은 중소기업인이 대부분인 말레이인종을 우대하기 위한 정책이란 것. 인구의 35%를 차지하는 중국계가 말레이시아 경제권의 90% 이상을 장악한 상황에서 54%를 점하는 말레이인들이 살아남을 길을 열어준다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 말레이시아가 이처럼 복잡한 인종구성의 난맥상을 풀어가는 모습을 음미해보면 커다란 약점이 뒤집어 생각할 때 장점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인종간 갈등을 억제한다는 소극적인 정책에서 탈피, 말레이시아 내의 여러 인종들이 대외진출의 첨병으로 활약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고 있다. 화교들은 중국을, 인도계는 인도를, 말레이계는 인도네시아를 가까이 두고 있는 만큼 이들 거대 신흥시장과의 연계거점으로서 말레이시아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경제정책 가운데 또하나의 특징은 바로 행정정보의 철저한 보안이다. 강한 권력 아래서 생겨난 관행이겠지만 말레이시아 중앙은행은 통화관련 각종 지표들을 제때 공개하지 않는다. 중앙은행이 공표하는 정보는 기껏해야 1년에 한차례 발간되는 「연차보고서」(Annual Report)가 고작이다. 이는 자유시장경제를 지향하는 국가에서는 흔치 않은 모습이지만 그들은 좀더 일사불란한 정책수행을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정책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외부의 입김이 개입될 여지를 차단, 힘을 분산시키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되고 있으며 그같은 의지가 용인되는 사회분위기다. 말레이시아 경제계는 지난해 경기과열에 대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벌써 10년째 계속되는 고성장이 부담스럽다는 분석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 개도국 대부분이 성장률 둔화로 고전하는데 비해 말레이시아는 8.2% 성장을 예상하는 등 경기 연착륙에 성공할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올해 말레이시아 정부예산 편성내용을 보면 고도성장에 탄력이 붙은 현재의 경기를 최대한 유지하는데 정책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부가 경제의 구조조정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고 그에 따른 균형예산을 편성했다고는 하지만 국책사업을 진행하는 속도를 보면 감속경영의 징후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다. 오히려 푸트라자야 신행정타운 건설, 수도권 광역정보통신망 구축, 바군댐 등 대규모 수력발전소·동북해안 남부고속도로·조호르∼싱가포르 연륙교 건설 등 대형프로젝트를 보면 「경기하강은 있을 수 없다」는 이들의 자신감을 넉넉히 읽을 수 있다. 당당한 자신감, 또 이를 뒷받침하는 과감한 투자가 바로 말레이시아 위기극복의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콸라룸푸르=손동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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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동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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