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 산책] 박제가 된 전통문화

김호연 광주여대 교양교직학부 교수


14일은 우연찮게 정월대보름과 밸런타인데이가 겹쳤다. 선물을 받은 사람이라면 아마 호두나 땅콩 등 부럼보다는 초콜릿을 받고 미소 짓지 않았을까 싶다. 이제 정월대보름은 상업화된 밸런타인데이에 밀리며 박제가 된 명절의 현실을 여지없이 보여준 것이다.

아주 오래전 달력이 생기기 이전에 정월대보름은 설보다 더 큰 명절이었다. 설이 몸가짐을 바로 하고 조상에 예를 갖추는 가족 중심의 날이었다면 보름은 봄을 앞두고 가장 풍요롭게 먹고 여러 놀이를 함께하며 신명을 돋는 대동의 날이었다.


풍속 사라지고 획일화된 행사만 남아

그런데 요즘은 보편적이었던 부럼 먹기, 더위팔기, 귀밝이술, 오곡밥 등도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점점 사라지고 있다. 단지 정월대보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세시풍속 대부분이 그러하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세시풍속은 설과 추석을 빼고는 다 사라졌다. 두 명절도 단순하게 오래 쉬는 날의 개념이지 즐기는 날은 아닌 듯싶다.


또한 지역의 큰 행사를 즐기려 해도 모두 획일화돼 있다 보니 마음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이번 정월대보름 지역 행사도 달집 태우기와 같은 행사만 보이는 듯하니 거기서 거기인 느낌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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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은 구습이고 단순한 전통의 일부분에 불과할까. 이를 즐기며 문화 콘텐츠의 생산적 구조를 만들어낼 수는 없을까. 일본에서는 2월3일 입춘을 하루 앞두고 세쓰분(節分)이라 해서 봄을 맞이하는 여러 행사를 갖는다. 마메마키도 그러한 것으로 콩을 뿌리고는 '악귀는 물러나고 복은 들어오라'고 외치며 묵은 기운을 정리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봄을 맞이하는 전통행사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또한 김밥을 자르지 않고 통째로 먹어 인연이 끊이지 않고 복도 함께 들어온다는 속설에 바탕을 둔 세쓰분용 김밥도 판매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1990년대 이후 오사카 편의점에서는 포장용 김밥 상자 안에 올해의 운세를 집어넣어 젊은 층도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전통을 만들어냈다. 단순하게 전통을 잇는 게 아닌 의미 있는 이야기를 얹는다. 전통 속에 스토리텔링을 창조한 것이다. 흔히 이야기하는 스토리텔링의 스토리(이야기), 텔(대화), 그리고 '~ing(현재형)'를 가장 잘 보여준 사례다.

21세기는 문화 전쟁의 시대다. 이제는 자동차·철강과 같은 구시대의 산업보다는 적은 자본을 들여 많은 이익을 남기는 부가가치 산업이 중요한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한 산업 융성의 근원은 결국 그 나라의 DNA인 전통문화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북유럽 신화에서 '반지의 제왕'이 나왔고 켈트신화의 바탕에서 영국의 '해리포터'가 창조됐다. 문화 콘텐츠로 파생됐으며 현재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 입혀 현재 맞게 발전시켜야

우리는 다양한 이야기와 전통문화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창조는 고사하고 그 대물림도 제대로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의미 있는 이야기꾼과 창조자가 아쉬운 대목이다. 정월 대보름에 조상들이 마신 귀밝이술은 어떤 술이었을까. 맑은 술이었을 듯한데 그럼 맛은, 세종대왕도 이순신 장군도 드셨을까. 민속 속에서 여러 이야기, 의미를 찾아볼 모티브는 많지 않을까. 상상의 나래를 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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