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위기의 나라살림] <상>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재정

공자기금서 빌린 돈만 내년 233조… 1년치 세수와 맞먹어



수입보다 쓸 돈 많은 구조에 상환 예정금액은 '0'

만기국채도 차환 발행… 500조 빚 감축 '언감생심'


재정 건전성 높이려면 '페이고 준칙' 등 도입 시급



정부가 재정적자로 텅 빈 나라 곳간을 공공자금관리기금에서 돌려막는 악순환을 반복하면서 국민들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공자기금에서 빌려 쓴 돈의 규모는 갈수록 커지는 반면 갚을 돈은 마련하지 못하면서 원금과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저성장 기조에 따른 경제성장률 둔화와 복지비용 부담 증가 등으로 정부의 재정적자 구조는 쉽게 개선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오히려 정부의 재정수지 악화 속도가 갈수록 더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에 따라 정부의 재정건전성을 강제하는 '페이고(pay-go)' 등 재정준칙을 법으로 강제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공자기금에서 꺼내 쓰고 급전 조달하고…이자만 10조원 육박=지난 2013년 재정당국이 공자기금에서 빌려 쓴 돈(예수금)은 24조5,000억원에 달한다. 이렇게 갚지 못하고 쌓여 이자를 내야 하는 공자기금 예수금 잔액이 172조9,000억원이다. 문제는 재정수지가 갈수록 악화하면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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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지난해 정부가 공자기금 원금을 상환한 액수는 1,000억원에 불과하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3조2,000억원 늘어난 27조7,000억원이 예수금으로 잡혀 있는데 상환 예정금액은 '0원'이다.

예산안상 예수금이 33조1,000억원에 달하는 오는 2015년에도 마찬가지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재정수지가 좋지 않은 만큼 상환에 돈을 못 쓰고 이자만 불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돈을 갚지 못하면서 쌓인 공자기금 예수금 잔액은 2015년 233조7,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다 보니 공자기금은 '쌈짓돈'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정부의 쌈짓돈은 이뿐만이 아니다. 초급전의 일종인 한국은행 일시차입금과 재정증권 발행도 있다. 중앙은행에서 빌린 돈과 시장에서 조달한 차입금으로 이자비용만도 올해에 1,540억원에 달한다. 당초 정부 예산안에 잡힌 일시차입금 이자상환 예산 600억원의 2배를 넘는 수준이다. 여기에 공적자금상환기금 등 적자성 채무를 더할 경우 한 해 국민이 재정당국이 빌린 돈의 이자로 내야 하는 세금이 1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

◇수입보다 쓸 돈이 많은 재정 구조…국가부채 갚질 못한다=재정당국이 다른 공적기관에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국세수입 등으로 들어오는 돈보다 쓰는 돈이 더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07년 15조3,428억원에 달했던 세계잉여금은 2013년 812억원으로 188배가 줄었다. 세계잉여금이란 정부가 당초 계획했던 예산상 목표로 잡았던 국세수입이 예상보다 더 들어왔거나 지출이 세출 예산보다 적어 사용하지 않아 발생한 금액을 합한 액수를 말한다.

특히 세수결손이 시작된 2012년에는 세계잉여금 규모가 5조1,285억원이었던 전년 대비 16.6%(8,533억원)로, 8조6,000억원의 세수가 펑크 난 2013년에는 전년 대비 9.5%(812억원)로 급격히 줄었다. 이렇다 보니 채무상환에 쓰이는 돈도 덩달아 급감했다. 2007년 5조640억원이던 채무상환액은 2009년 1조4,394억원으로 4분의1토막이 났다. 2010년 2조2,285억원으로 잠깐 느는가 싶더니 2011년부터 급격히 줄어 지난해에는 414억원만 나랏빚을 갚는 데 쓰였을 뿐이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500조원을 돌파한 국가부채를 갚는 것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 만기도래한 국채도 차환발행으로 돌려막기에 급급한 실정이다.

◇재정건전성 위한 법적 장치 마련 필요=빌려 쓰는 돈은 늘고 갚은 돈은 줄어드는 상황이다 보니 최근 들어서는 페이고 준칙 등 재정건전성을 담보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페이고 준칙이란 복지비용 등의 의무지출을 수반하는 정책을 입안할 때 재원마련 대책도 함께 제출하도록 하는 원칙을 말한다. 일각에서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을 법적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뿐만 아니라 증세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빚을 안 지려면 쓰는 것을 줄이거나 들어오는 것을 늘리는 방법밖에 없다"며 "재정준칙을 법제화하는 등 정부의 돈 씀씀이를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증세 등 근본적인 세입 확충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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