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지급준비율을 인상한 후 시중은행들이 지급준비금을 확보하기 위해 통화안정증권 매입을 줄이고 있다. 이에 따라 한은의 통화안정증권 발행잔액이 지난해 11월 이후 40여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세를 기록했다. 한편 지준율 인상 이후 시중은행의 대출금리가 급등, 은행 고객들의 대출이자 부담이 가중되면서 통안증권 발행에 따른 한은 적자가 고객 돈으로 전가됐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시중은행 자금담당자들은 21일 “지급준비금 마련으로 자금사정이 좋지 않아 통안증권 입찰 참여를 크게 줄였다”며 “한은이 지준 관리를 엄격하게 하겠다는 입장을 계속 밝혀 통안증권 잔액은 계속 감소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에 따르면 통안증권 발행잔액은 지난해 11월 이후 두달 동안 5조8,000억원이나 줄었고 올 들어서도 낮은 응찰과 높은 금리로 2조4,000억원이 발행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지난 66년 통안증권이 본격 발행된 후 올해 처음으로 잔액이 감소하고 한은이 4년 만에 적자에서 벗어날 가능성도 높아졌다. 통안증권 발행잔액은 97년 23조4,000억원에서 빠르게 늘어나면서 지난해 10월 164조2,000억원으로 7배 이상 불어났다. 그러나 지준율 인상을 발표한 지난해 11월 잔액은 163조4,000억원, 12월에는 158조4,000억원으로 감소했다. 은행들의 응찰이 크게 줄어든데다 한은이 금리가 높다는 이유로 발행물량을 줄였기 때문이다. 한은은 올 들어서도 계획된 9조원 중 6조4,300억원만 발행하고 나머지 2조5,700억원은 발행하지 않았다. 반면 1월 상환금액은 12조5,900억원으로 이달에도 발행잔액이 줄어들 전망이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지준율 인상 후 전체 물량의 3분의1 가량을 매수하던 은행들의 응찰이 크게 줄었다”며 “통안증권 발행금리도 너무 높아 물량을 제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들이 지준금 마련을 위해 적극적인 자금조달에 나서면서 시중금리가 오르고 시중금리에 연동하는 대출금리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 여기다 한은에 무이자로 예치하는 지불준비금에 대한 기회비용까지 더하면서 대출금리 상승 속도가 가파르다. 한 시중은행이 주택담보대출에 적용하는 최저 금리는 지준율 인상 전 5.61%에서 최근 5.99%로 0.38%포인트나 상승했다. 반면 정기예금 금리는 4.65%에 멈춰 있어 예대마진이 점점 커지고 있다. 한 채권시장 관계자는 “한은이 지준율 인상으로 시중자금도 흡수하고 통안증권 이자부담도 더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었다”며 “은행도 예대마진을 넓혀 이익을 챙기고 있는데, 대출이자가 높아진 고객들만 지준율 인상에 따른 비용을 모두 떠안은 셈이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