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달 29일 발생한 서해교전 사태에 대해 '유감'을 표시했다. 통상 외교수사(修辭)는 국가간의 문제에 대한 입장표명이기 때문에 개인간의 의사표시와는 크게 다르다. 같은 표현이라도 상당히 우회적, 다의적(多意的)이기 마련이어서 늘상 논란을 야기하기도 한다.
지난 25일 북한의 김령성 남북장관급회담 북측수석대표가 우리측 정세현 통일부장관에게 보내온 전화통지문은 그 중에서도 전형적이다. 김대표는 통지문에서 "서해상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무력충돌사건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하면서 북남 쌍방은 앞으로 이런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유감표시'가 어떻게 '사과'냐는 견해도 나오고 '우발적 발생' '공동의 노력' 등의 표현에 대해 그들의 '의도된 도발'을 희석시키려는 저의가 있다는 견해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교전사태와 관련해서 특정국가가 유감을 말했다면 그것은 교전이 잘못된 행위였음을 인정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공동의 노력'부문도 책임의 물타기 시도로 보기 보다는 재발방지를 위한 협상 의사를 밝힌 것으로 보면 무난하다고 할 것이다. 북방한계선 문제는 그것이 통행의 문제이던, 어장의 문제이던 군사정전위나 남북간 군사회담ㆍ어업회담을 통해 협의해야 할 사안이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북한은 그 동안 무수하게 많은 대남도발을 자행했고, 그 때 마다 북한은 '사과' 표현대신 '유감' 표명만 했다. 이번의 유감표명도 같은 종류가 아니냐, 그래서 같은 도발을 다시 획책할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은 여전하다. 북한은 그 점에서 이전의 유감표명과 다른 점을 보여줘야 한다.
우리는 서해교전에 대해 북측에 3가지의 요구조건을 제시했다. 사과와 재발방지의 보장과 책임자처벌이다. 이번 전화통지문이 앞의 두가지 요구사항에 대해서는 미흡한대로 응답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책임자처벌에 대해선 아무 대꾸가 없다.
그것은 우리에게 굳이 통보할 사안은 아니다. 내부조치로 단행하면 그만이다. 월드컵 기간중의 서해교전은 북한으로도 백해무익한 망동이었다. 도발책임자를 처벌해야 만 북한의 유감표명은 국제사회의 신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북한은 배급제도의 개편과 임금의 생산성연동제 등 자본주의식 시장경제를 시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식량배급제의 개편이 성공을 거두려면 쌀의 공급이필수적이다. 남한으로부터의 쌀 지원은 그것을 해결하는 유일한 길이다. 확실한 책임자 처벌은 남한의 재고쌀 문제를 북한의 변화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