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노무개혁 없이 허브항만 없다] <1> 1명 일자리에 8명 매달려…

1명만 있어도 가능한 작업 8명이 매달려…<br>자동화 불구 노조 독점 노무시스템 효율성 외면



[노무개혁 없이 허브항만 없다] 1명 일자리에 8명 매달려… 하역과정 대부분 자동화로 그나마 1명도 할일 별로 없어 특별취재반 이달 말 상하이 양산 신항이 개장되면서 동북아 물류 패권을 잡으려는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물량 경쟁이 아니라 서비스 경쟁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현실을 고려할 때 더 이상 방황과 갈등은 허용되지 않는 상황이다. 본지는 다섯 차례에 걸쳐 항만노무공급 시스템의 현주소를 짚어보고 그 대안을 모색해 본다. 지난 1일 오전11시 인천항 내항 4부두. 지난달 31일 오후5시에 입항했던 선박 트러스트 에이스(TRUST ACE)에 선적된 중국산 옥수수 1만1,818톤을 하역 하는 작업이 한창 벌어지고 있었다. 이날 오전8시부터 오후5시까지 8시간 동안 하역한 옥수수는 약 4,120톤. 하역과정은 거의 대부분 자동화돼 있다. 양곡은 언로더(Unloaderㆍ원심력으로 퍼올리는 기계)와 갠트리(Gantryㆍ포크레인과 유사한 뜨는 기계), 그리고 컨베이어를 통해 100% 자동으로 배에서 저장소(사일로)로 이동된다. 이 과정에서 투입된 항운노조원이 할 일은 별로 없다. 하역 마지막 날 구석진데 놓여져 제대로 흡착되지 않거나 잔여 양곡을 모아주고 청소하는 정도다. 하역회사 관계자는 "하역 마지막 날 한 명만 있어도 작업이 가능하다"며 "그러다 보니 일 없이 시간을 보내는 노조원들이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하역회사(부두운영회사)인 A사가 이날 주간 작업에 대해 다음달 초 노조에 지급할 인건비는 화물 톤당 계산되는 도급제 요율에 따라 122만1,980원(언로더 장비활용 톤당 251원, 갠트리 장비 활용 톤당 554원)에 달한다. 노조가 투입한 인원이 8명임을 감안할 때 한 사람마다 일당 15만2,748원이란 적지않은 돈이 지급되는 셈이다. 같은 날 인천 내항 4부두 후면 A사의 야적장에서는 하역사 운전 직원들이 트렌스테이너(Trans Tainer) 5대를 활용, 컨테이너를 화물차에 올리거나 내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노조는 기계작업 과정에 앞 뒤를 봐준다며 17명이란 인력이 투입됐다. 그러나 준상용화 시스템이 도입돼 지난 9월 개장한 인근의 인천 컨테이너 전용부두 ICT 야적장에서는 똑 같은 작업이 같은 장비와 운전자들만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물론 하역작업 중 냉동ㆍ냉장수산물, 포대작업 등 아직까지 수작업을 요하는 힘든 일이 없지는 않지만 컨테이너ㆍ양곡ㆍ석탄ㆍ철강 등 자동화된 대부분의 하역장에서는 비슷한 현상이 매일 되풀이되고 있다. 무소불위 항운노조…구조조정 '발목' 파업우려 정부·사측 무기력한 대응 되풀이 상용화 전환땐 年2,000억 비용절감 효과 "동북아 물류허브위해 더이상 외면 말아야" 전국의 항만하역 시스템이 과잉인력으로 몸살을 넘어 10여년 이상 만성피로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 올 상반기 검찰의 수사로 드러나 충격을 준 전국적인 채용ㆍ발주 비리는 클로즈드숍(Closed Shop)이란 불합리한 항만노무공급 시스템이 끼치는 해악과 비교할 때 별로 큰 문제가 안될 정도다. 지난 75년 인천항 제7부두에 양곡기계화 하역시스템 구축을 계기로 자동화ㆍ기계화 하역이 시작됐고 80년대 후반부터 컨테이너 전용부두 등 자동 하역시스템이 전국 항만에 본격 도입되면서 형성된 과잉인력이 제대로 구조조정을 거치지 않아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인천항운노조에 따르면 인천 지역 항운노조원들은 지난해 월평균 23~25일(야간 8시간 작업도 1일 근무간주) 근무해 월평균 330만원의 임금을 받아갔다. 그러나 이 지역 하역 부문 선두그룹에 속하는 한 회사 직원들이 추석ㆍ설 등을 제외하고 연중 내내 야간근무까지 하며 받아간 지난해 월평균 보수 250만~260만원에 비해 29%, 지난해 전체 산업평균 임금 237만원보다 39%나 높다. 항만물류협회와 항운노조가 공동으로 용역한 '항만노무공급체제개편방안 연구' 결과에 따르면 영국(전체 항만)과 호주 시드니항, 뉴질랜드 오클랜드항은 항운노조가 독점하는 노무공급시스템을 하역회사들이 스스로 채용하는 '상용화'로 전환한 후 각각 인력이 81%, 50%, 33%나 줄었다. 선박의 체류시간도 상용화 후 대만 카오슝항은 14%, 호주 시드니항은 50%, 뉴질랜드 컨테이너 부두는 60%, 일반부두에서는 78%나 감축됐다. 우리나라도 상용화로 인력과 체류시간이 각각 50%씩 줄어든다면 해마다 연간 2,000억원 가량의 비용이 절감될 것으로 분석됐다. 일의 특성에 따라 하역회사가 적재적소에 근로자를 투입해야 효율적이지만 노조가 독점 공급함에 따라 하역의 효율성은 원천적으로 봉쇄되고 있는 점도 심각한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동북아 경제의 급성장으로 물동량이 폭주하고 각국들이 이를 유치하기 위해 사활을 걸면서 항만 하역의 속도, 서비스 수준이 핵심 경쟁요소로 떠오르고 있고 이를 위해 기계화ㆍ자동화가 신속히 이뤄져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노조가 기계화나 컨테이너 부두를 신설할 때마다 거액의 실업보상금을 요구, 제동이 걸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불합리한 현상이 십여년간 지속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항운노조가 '수출산업의 발'을 담보로 '파업'이라는 무기로 위협했고 하역회사ㆍ하주회사들이 파업으로 인해 발생할 막대한 피해를 우려해 무기력하게 대응했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자동화 장비 도입과정에서 벌어진 노사협상에서 화물 톤당 단가를 충분히 떨어뜨리지 못했다. 컨테이너 전용부두 신설시 상용화 시스템을 도입할 때도 물량이탈을 명분으로 한 실업보상금을 지급하라는 항운노조의 으름장에 힘없이 내주면서 관행화됐다. 상용화 작업장 내 근로자의 절반 가량에 대해서도 채용ㆍ인사권을 보유할 정도의 막대한 권한을 가진 항운노조가 항만에서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행사해왔던 것이다. 이에 대해 최봉홍 전국항운노조연맹 위원장은 "항운노조도 상용화를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며 "정부가 대화를 통해 개혁을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주도해 현장 근로자들의 반발을 사고 있어 진척이 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역대 정부도 번번이 항운노조의 편을 들어왔다. 현 정부도 이런 문제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원칙적인 대응을 하지 못한 채 눈치만 살피다가 검찰의 항운노조 비리 수사로 여론이 들끓자 뒤늦게 개혁에 나섰다는 따가운 비판을 받고 있다. 물론 항만하역ㆍ하주업계는 항운노조가 60~80년대에 단 한번도 파업하지 않았고 최근 몇 년간 시도된 화물연대의 파업 때도 산업평화를 유지, 적지않게 기여한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있다. 물동량이 들쭉날쭉한 항만의 특성을 감안하고 근로자의 복지수준을 유지하며 안정적인 노동력을 공급했다는 측면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동북아가 '개방'이라는 카테고리에서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고 생존의 위기를 맞고 있는 우리나라가 동북아 물류허브 전략을 펴는 점을 고려할 때 이제는 항운노무개혁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다는 현안이라고 한 목소리로 지적했다. 특히 이달 말 문을 여는 상하이 신항은 환적화물 처리비용의 50%를 인하한다는 파격적인 전략을 내세우며 동북아 물동량 싹쓸이 전략을 내놓고 부산항을 위협하고 있다. 영국ㆍ프랑스ㆍ독일ㆍ호주ㆍ뉴질랜드ㆍ대만 등 외국에서는 대부분 80년대 후반, 늦어도 90년대 후반에 상용화 전환을 완료한 상황이다. 전일수 인천대 동북아물류대학원장은 "모든 분야의 사회 체제가 불합리에서 합리로, 비효율에서 효율로 전환을 요구받고 있는 시기"라며 "항만이 살기 위해 저렴한 비용, 질적인 차별성을 갖춰야 한다는 점에서 상용화는 필수적인 과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입력시간 : 2005/11/15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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