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5일 발표한 1ㆍ4분기 경제성적표는 우리 경제가 현재 생산감소→투자부진→소득악화→저축부진→생산급감이라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는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그나마 정부의 막대한 재정지출로 경기하락을 방어하고 있지만 정부 공급은 한계가 있는 만큼 섣불리 경기회복을 낙관하기 힘들다는 게 한은의 전망이다. ◇정부 재정지출의 힘=1ㆍ4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전기 대비 0.1% 성장했다. 이는 지난해 4ㆍ4분기에 5.1% 감소했던 것과 비교하면 외견상 상황이 크게 개선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1ㆍ4분기 성장률이 정부의 막대한 지출에 크게 의존했기 때문이다. 정영택 한은 국민소득팀장은 "정부의 조기 재정지출에 따른 성장기여도는 1ㆍ4분기에 1.8%포인트로 2년 평균 0.6%포인트의 3배에 이르렀다"면서 "정부지출이 없었다면 전기 대비 성장률은 -0.6%, 전년 동기 대비 성장률은 -5.4%로 계산된다"고 말했다. 1ㆍ4분기 한국경제는 수출이나 내수보다는 정부의 힘으로 간신히 마이너스를 모면했다는 것이다. 실제 민간소비의 성장기여도는 –2.0%포인트에서 -2.5%포인트로, 수출은 -3.0%에서 -5.6%로 악화됐다. 한편 이날 발표된 1ㆍ4분기 GDP 잠정치는 지난 4월의 속보치보다는 다소 좋아진 것으로 파악됐다. 두 수치 모두 전기 대비 0.1%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소수점 이하가 달랐다. 속보치는 성장률이 0.05%로 간신히 반올림한 0.1%였지만 잠정치는 0.11%여서 분명한 0.1% 성장으로 집계됐다. ◇소득ㆍ투자ㆍ저축 부진의 늪=수출과 내수 등 생산 감소로 국민총소득(GNI)이 직격탄을 맞았다. GNI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생산 활동에 참여한 대가로 벌어들인 총소득을 보여주는 지표다. 1ㆍ4분기 실질 GNI의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은 -4.7%다. 지난해 3ㆍ4분기의 -2.7%, 4ㆍ4분기의 -5.4%에 이어 3개월째 감소세다. 전기 대비로도 0.2% 감소했다. 전분기에 비해서는 다소 개선되는 모습이지만 글로벌경기 침체로 급격한 회복세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소득 감소는 저축부진으로 이어졌다. 1ㆍ4분기의 총저축률은 29.3%로 2001년 4ㆍ4분기의 29.0% 이후 가장 낮았다. 이는 명목 국민총처분가능 소득이 0.5% 감소하며 저축 여력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소득과 생산감소로 투자도 부진하다. 국내총투자율은 1ㆍ4분기에 26.5%로 1998년 4ㆍ4분기의 26.0% 이후 최악이다. 국내총투자율은 지난해 1ㆍ4분기 30.8%, 2ㆍ4분기 31.4%에 이어 3ㆍ4분기 33.1%로 상승했으나 4ㆍ4분기 29.4%로 내려왔고 올 1ㆍ4분기에는 더욱 감소했다. ◇경기낙관론은 글쎄…=경기급락세가 둔화하고는 있지만 현재로서는 경기바닥 시점을 논하기가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 판단이다. 이날 정 팀장은 "우리 경제가 진정한 회복을 보이려면 수출입이 늘어나면서 생산도 플러스로 전환되고 민간투자나 설비투자 확대가 나타나야 한다"면서 "이것이 고용이나 소득의 증대로 이어져 민간소비가 살아나기 전까지 경기회복이나 바닥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 재정지출에 의존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소비나 수출ㆍ투자 등이 부진한 상태에서 경기회복 속도는 상당히 더딜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의 실물경제실장은 "민간소비는 상당 기간 침체 일로를 걸을 것으로 본다"며 "여기에 국내총투자율도 더욱 줄어들어 내수경기가 회복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