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12월 4일] <1567> 그레인지운동


1867년 12월4일, 미국의 수도 워싱턴. 농장주와 농무부ㆍ재무부ㆍ우편국 관리 출신 농부, 목사와 여성운동가 등 7명이 '그레인지(Grange)'를 만들었다. 요즘에는 3,500여개로 줄었지만 한때 1만2,000개가 넘던 미국 농민협동조합의 시초다. '전국농민후원자회의'라는 정식 명칭을 가진 그레인지의 발기 목적은 철도회사의 폭리에 대한 저항. 설립은 대농장주이자 농무부 관리인 올리버 켈리가 주도했다. 남북전쟁 직후 중서부와 남부의 농업 실태를 파악하라는 앤드루 존슨 대통령의 명을 받아 보고서를 올리는 한편 뜻이 맞는 사람을 모아 단체를 띄웠다. 그레인지는 첫 타깃으로 삼은 철도자본과 맞서며 급속히 세를 불렸다. 지나치게 높은 운임을 받는 철도회사와의 싸움에 한창이던 1875년에는 회원 수가 100만명선을 넘었다. 곡식의 매점매석과 출하시기 조절로 막대한 부를 쌓아온 창고업자들도 그레인지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한동안 선거 결과까지 좌우하던 그레인지의 힘은 곧 꺾였다. 농민당ㆍ그랜백당 등 농민이 정치에 직접 참여하기 시작한 뒤부터다. 대공황 이후 잠시 중흥기를 맞았지만 감소세로 돌아서 요즘 그레인지 회원은 30만명을 밑도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약해졌지만 그레인지는 두 가지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출범부터 여성과 청소년에게도 남성과 똑같은 발언권을 부여한 그레인지의 평등주의는 여성참정권운동과 합쳐져 오늘날 양성평등으로 이어졌다. 미국 농부들이 목소리 높여 주장하는 농산물의 완전자유무역을 처음 주창한 단체도 그레인지다. 그레인지의 소멸을 예측하는 기사도 요즘에는 종종 나온다. 회원들이 나이가 들어 세상을 떠나도 신규 회원 가입이 거의 없는 탓이다. 남의 일 같지 않다. 우리 농촌의 미래를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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