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面厚心黑
연성주 생활산업부장
연성주
면후심흑(面厚心黑)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직역하면 얼굴이 두껍고 마음씨가 시커먼 사람이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말은 20세기 초 중국의 철학자 리쭝우(李宗吾)가 창안한 후흑학(厚黑學)에서 비롯됐다. 후흑은 면후와 심흑의 합성어다. 후흑은 글자 그대로 뻔뻔하고 음흉스러움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즉 상황에 따라 굴욕을 참아낼 수 있을 정도로 강인하면서도 유연한 변신이 ‘면후’라면 결단을 내릴 때는 인정을 고려하지 않는 냉정함이 ‘심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후흑은 국가나 조직을 위해 써야지 개인을 위해 쓰면 오히려 자신을 망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과거에는 제왕이나 정치가들에게나 필요했지만 오늘날에는 CEO는 물론이고 개인도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이다. 빌 게이츠나 손정의, 잭 웰치 같은 세계적인 CEO들의 리더십을 뒤집어보면 면후심흑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 저돌적인 리더십, 불도저 같은 추진력, 냉철한 판단력, 탁월한 협상력 등은 모두 후흑에서 나온다.
새로운 정치를 표방한 참여정부가 들어선지 어느덧 1년 반이 지났으나 부정부패ㆍ인사청탁ㆍ정실인사 등 고전적 악습은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공기업들의 낙하산 인사가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기업 감사 93명 가운데 정ㆍ관계 출신이 무려 70명이나 되고 청와대와 여당 등 정치권 출신이 32명이었다.
감사 자리가 논공행상 차원에서 여권 인사들이나 퇴직공무원들에게 안배되는 관행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이러다보니 참여정부가 약속한 공기업 개혁은 이미 물건너갔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공무원들의 부정부패의 고리도 끊이지 않고 있다. 부패 감시 국제민간단체인 국제투명성기구(TI)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부패지수는 10점 만점에 4.5점을 기록해 전세계 146개국 중에서 47위에 그쳐 지난해(133개국 중 50위)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인사청탁을 하면 패가망신 시키겠다”고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선언했으나 정권에 가장 가까운 사람들부터 이를 지키지 않고 있으니 청탁이 없어질리는 만무하다.
최근 방한했던 ‘강대국의 흥망’의 저자인 미국의 예일대 폴 케네디 교수가 우리에게 던진 말을 한번쯤은 되새겨봄직하다. 케네디 교수는 “한반도는 4마리 코끼리 사이에 낀 작은 동물에 불과하다”며 “한국이 갑작스럽게 정책을 바꾸면 생존이 위협받는다”고 경고했다. 한국이 대외정책을 갑자기 친미에서 친중으로 바꾸면 한국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내년은 우리나라가 일본에 사실상 나라를 빼앗긴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불행하게도 우리가 처한 대내외적 환경은 100년 전과 흡사하다. 미국ㆍ중국ㆍ일본ㆍ러시아 등 4대 강국이 우리를 둘러싸고 으르렁거리고 있으며 이들이 우리의 운명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21세기 국력의 원천은 경제력에 있다. 우리의 경제력이 세계 10위권에 해당될 만큼 커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자생력은 극히 취약하다. 지금은 파이를 나누는 일보다 키우는 일이 더 시급하다. 정부는 외환위기 때의 금모으기운동을 거울삼아 전국민의 성장에너지를 통합하는 방식으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신행정수도건설 특별법의 위헌 판정으로 또 다시 나라가 친노와 반노로 갈라질 위기에 놓여있다. 노 대통령이 헌재 결정을 수용하기로 했다고 하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수도이전 논란을 종식시키기 위해 정치권이 앞장서야 하며 국민들도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에게 직면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후흑구국의 정신으로 무장할 때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sjyon@sed.co.kr
입력시간 : 2004-10-25 16: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