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가 기침을 하면 세계 경제가 감기에 걸린다는 그동안의 속설이 현실화되면서 세계 증시가 불안에 떨고 있다. 28일 한국은 물론 일본ㆍ중국 등 아시아 증시가 급락한 것은 지난주 말 미국 증시의 급락에 연동돼 움직인 것이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아시아 국가들도 글로벌 경기침체의 수렁에 빠진 것 아니냐는 우려로 투자심리가 급랭했기 때문이다. 지난 22일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0.75%포인트의 대폭적인 금리인하를 단행했음에도 불구,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이 지속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이 경기침체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아진 가운데 세계 경제의 약 12%를 차지하는 일본ㆍ영국ㆍ스페인ㆍ싱가포르 등도 침체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이에 따라 세계 경제성장률이 지난해 4.7%에서 올해는 3%대로 급격히 둔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계 경제의 3% 성장은 침체로 간주된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세계 경제가 3%대 성장에 그친 것은 지난 20년 동안 1990~1993년, 1998년, 2001~2001년 세 차례뿐이다. 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은 지난주 말 캐나다 벤쿠버에서 “이제 세계 경제의 침체는 어떤 식으로든 피할 수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짐 오닐 골드만삭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올 상반기는 2002년, 또는 심지어 9ㆍ11 테러 사태가 일어났던 2001년보다 좋지 않을 수 있다”며 “전세계 곳곳에서 경기침체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1990년대 장기불황에서 헤어나온 일본 경제가 잠시의 호황을 구가하다가 다시 위험에 빠질 우려가 높다. 미국 주택경기 침체와 엔화 초강세가 일본 경제에 이중고로 작용하고 있다. 시라이시 히로시 리먼브러더스 이코노미스트는 “일본 경제는 침체 직전에 와 있다”며 “전문가들이 경기부양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미 경기침체로 힘을 잃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경기악화가 전세계로 빠른 속도로 전염되면서 전세계의 지도자들은 세계 경제와 글로벌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로베르토 리고본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영대학원 교수는 “FRB가 전격적으로 금리를 인하한 조치는 미국 경제가 악화하고 있다는 증거”라며 “금리인하가 경제를 살릴 수도 있지만 경기침체에 대한 두려움은 그만큼 더 커졌다”고 지적했다. 빌 클린턴 행정부 당시 재무부 장관을 역임한 로런스 서머스 하버드대학 교수는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문에서 “불과 2개월 전만 해도 과연 미국 경제가 침체로 빠져들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았고 경기부양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며 “지금은 재정지원을 통한 경기부양 외에도 추가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IMF 총재도 “금리인하 조치만으로는 신용위기를 극복하는 데 충분하지 않다”며 “미 행정부가 준비 중인 경기부양책 등이 시장의 위기를 풀어갈 수 있는 해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FRB의 금리인하 조치로도 신용경색으로 흔들리는 뉴욕 증시의 분위기를 반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FRB가 큰 폭의 금리인하를 단행했음에도 글로벌 증시가 반등하지 못하면서 많은 투자자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FRB가 금리를 인하하면 반드시 증시가 반등한다는 시장의 학습효과가 무색할 만큼 증시의 불안감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는 것이다. WSJ는 FRB가 30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또 한번의 금리인하를 단행할 것으로 예상했다. WSJ는 그러나 “투자자들은 FRB의 긴급조치로도 시장이 안정되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다”며 “만일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FRB는 앞으로 더 이상 (시장을 다루는) 마술 지팡이의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