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소로스 "자금이탈 불러 엔화 붕괴 위험"

■ BOJ 화끈한 돈풀기 경고 잇따라<br>2년 내 물가 2% 달성 가능성은 10% 안돼<br>스태그플레이션·국채 폭락·자산버블 우려도


4일 일본은행(BOJ)이 발표한 고강도 양적완화 효과가 5일에도 일본 금융시장을 뜨겁게 달궜다. 이날 엔화가치는 한때 3년8개월 만에 달러당 97엔대로 진입했다. 도쿄증시의 닛케이평균주가지수는 장중 600포인트 가까이 치솟으며 4년8개월 만에 1만3,000선을 돌파했다가 차익매물이 나오며 1.58% 오른 1만2,833.64로 장을 마쳤다. 10년 만기 일본 국채금리는 0.315%까지 급락해 전날에 이어 이틀 연속 사상 최저치를 경신했다.

하지만 시장의 호응과 달리 일본은행의 파격적인 '실험'이 초래할 결과에 대한 전문가들의 전망은 비관적이다. 돈 풀기로 자산가격이 오르고 금리가 떨어지면 소비ㆍ투자심리가 살아나 일본경제가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일본은행의 기대와는 달리 일본 안팎에서 '2년 내 인플레이션율 2%'라는 일본은행의 목표달성을 낙관하는 목소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규모 돈 풀기에도 불구하고 일본은행이 물가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은 10% 미만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자칫 이번 조치가 수출 및 경기회복을 동반하지 못하는 엔저로 이어지면서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 저성장)을 초래하거나 엔화가치 붕괴와 국채폭락 사태로 흘러갈 위험이 있다는 경고도 제기되고 있다.

헤지펀드계의 거물 투자자인 조지 소로스는 4일(현지시간) CNBC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은행의 양적완화가 "엔화의 붕괴(avalanche)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규모 돈 풀기로 일본 투자자들이 엔화약세를 예상하고 자금을 해외로 유출하기 시작하면 엔화가치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린다는 것이다. 소로스는 "25년간의 적자누적과 경제정체 뒤에 이뤄진 이 같은 조치는 매우 위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도 이번 조치에 대해 "지속적인 재정개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일본국채의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고 장기 리스크를 경계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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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다 하루히코 총재의 정책결정에 대한 위험성을 경계하는 목소리는 일본 내 곳곳에서도 나오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은 5일자 사설에서 "위험천만한 도박이 시작됐다"며 중앙은행의 장기국채 매입이 정부 빚을 메우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가뜩이나 국채버블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에서 국채가격이 더 올라갔다가 버블이 붕괴될 경우 심각한 금융불안이 발생할 수 있다고 신문은 경고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인터넷판은 가파르게 진전되는 엔화약세가 수출회복으로 이어지지 못하면 이번 완화조치가 경기회복을 동반하지 못하는 자산버블을 초래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신문은 앞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의 구조개혁 효과로 2005년 1월부터 2007년 6월까지 엔화가치가 달러당 101엔에서 124엔로 하락했지만 해외 수출가격에는 엔저가 거의 반영되지 못했다면서 아베 신조 정권이 이 같은 리스크를 답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엔저로 수입물가가 올라 일본 가계가 소득증가 없이 고물가에 시달릴 수 있다는 점도 위험요인으로 꼽았다.

2% 물가목표 달성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도 높다. 아소 다로 재무상은 5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전날 일본은행이 내놓은 양적완화 조치를 환영하면서도 "물가상승률을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그것도 2%로 올리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2% 물가목표를 구상한 아베 정권의 경제수장이 직접 시인했듯이 일본은행의 완화조치가 '2년 내 2%'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은 사실상 희박한 것으로 평가된다. 일본 민간연구기관인 일본경제연구센터는 일본의 물가상승률이 2%에 달하려면 신흥국 수준인 4%의 경제성장 속도를 이어가야 한다면서 일본은행의 목표실현 가능성이 10%에도 못 미친다고 분석했다. '채권왕' 빌 그로스도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은행이 국채매입을 통해 물가를 2%로 끌어올리는 것은 "비현실적" 이라고 못 박았다. 물가가 이 정도로 오르려면 엔화가 상당 수준 추가 하락해야 하는데 주요7개국(G7)이 이를 허용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일본경제연구센터는 물가상승 목표를 2년 내 달성하지 못하고 양적완화를 지속할 경우 일본 정부에 대한 국제신용도가 하락하면서 국채금리가 상승해 경제에 막대한 손실을 입힐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신경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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