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로 매년 15조~16조원의 부실채권이 쏟아지는 가운데 마땅히 굴릴 곳이 없는 연기금 등의 거액 자금도 부실채권 투자에 몰리고 있다.
당국의 감독·규제를 받지 않는 데다 시장이 과열될수록 채무자가 악성 채권추심에 노출될 위험이 커진다. 시장의 독과점 구조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들은 올해 매각·상각 등으로 15조1,000억원의 부실채권을 처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은행들이 매각·상각하는 부실채권은 2008년 6조원에 불과했으나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이듬해 13조6,000억원으로 급증했고, 지난해는 15조6,000억원에 달했다.
은행들은 분기마다 매각·상각 채권의 일부를 자산관리회사(AMC)로 불리는 유동화 전문회사를 상대로 경쟁입찰에 부친다. 연간 입찰 규모는 6조~7조원에 이른다.
연합자산관리(유암코)와 우리F&I가 물량의 70~75%를 싹쓸이하는 가운데 한국개발금융, 파인트리자산운용 등 후발주자와 군소업체가 나머지 물량을 받는 구조다.
NPL 시장은 기대수익률이 연 10%까지 오른 것으로 알려져 지난달 외환캐피탈이 진출을 선언한 데 이어 일부 지방은행과 보험사도 컨소시엄 구성을 검토 중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에는 연기금이 비교적 수익률이 높은 NPL 시장에 눈독을 들여 몇몇 후발 업체에 자금을 대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NPL은 은행들이 돈을 떼일 수 있다고 판단해 여신건전성을 ‘고정이하’로 분류한 채권이지만, 이 가운데 일부라도 채권 회수에 성공하면 수익률은 급상승한다.
주택·공장 등 담보가 있는 채권은 통상 70~80%에 팔리지만, 신용대출 등 담보가 없는 채권은 0%대 헐값에 팔리기도 한다.
실제로 여러 대부업체가 무담보 NPL을 사들여 불법 추심을 동원, 채권을 회수해 짭짤한 수익을 올리기도 한다.
담보가 있어도 부동산 가격 하락 탓에 채권 회수가 덜 되면 2차 시장(secondary market)으로 불리는 ‘잔존채권’ 매매로 넘어가 더 극심한 추심을 당한다.
한 신용정보사 관계자는 “채권이 여러 차례 넘어갈수록 제도권과 거리가 멀어져 추심의 강도는 강해지고, 금융소비자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대부업체가 직접 사들이거나 2차 시장으로 흘러가 무분별한 채권 추심에 시달려 금융당국에 민원이 들어오거나 제재를 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시장의 혼탁을 방지하고 불법 채권추심의 여지를 줄이려고 정부가 추진해온 자산유동화법 개정은 국회에서 수년째 낮잠만 자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NPL 시장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며 “시장이 효율적이고 공정하게 돌아가도록 모니터링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6개 시중은행이 출자한 유암코와 우리금융그룹의 계열사인 우리F&I가 시장을 독식함으로써 가격 결정 구조가 왜곡돼 부작용이 생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암코 관계자는 “자금력이 세고 노하우가 축적되다 보니 그런 오해를 받는 것 같다”며 “유암코가 NPL 시장의 규모가 키우는 데 적잖은 기여를 했다”고 말했다.
/디지털미디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