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또 갈피 못잡는 「한보 수사」/정씨 「입」따라 수사 ‘출렁’

◎정리스트 의문투성이… 본질 흐려져한보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중심을 잃고 있다. 구체적 증거나 객관적 정황, 피의자의 진술을 종합해 수사하기 보다는 정태수씨의 「입」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인상이 짙다. 이 때문에 검찰 주변에서는 검찰이 「정태수 리스트」를 마치 한보 수사의 최대 증거인 양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흘러 나오고 있다. 엄밀히 말해 정리스트는 검찰이 광범위한 수사를 통해 혐의를 확정한 「명확한 증거」는 아니다. 단순히 정씨와 그 측근들의 일방적 진술이거나 정치권에 떠돌던 괴문서들을 종합한 것일 뿐이다. 따라서 검찰이 리스트의 사실 여부도 확실히 검증하지 않은 채 명단에 오른 인사들을 무작정 소환하고 있는 행태는 정씨의 의도에 「놀아나는 것」이라는 지적도 만만찮게 제기되고 있다. 정치권에서 검찰 수사에 반발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리스트가 과연 정씨가 뇌물을 건넨 인사들을 모두 포함한 것인가도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관련, 검찰이 정리스트라고 발표한 33명 외에 정씨로부터 돈을 받은 사람이 더 있다는 얘기가 기정 사실처럼 나돌고 있다. 이른바 「56명설」 「58명설」이 그것이다. 물론 검찰은 「33+알파」설을 강력히 부인한다. 김상희 수사기획관은 『정리스트는 정씨와 김종국 재정본부장, 박승규 한보문화재단회장 등의 진술을 다 모은 것』이라며 『33명 말고 숨기고 있는 명단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씨의 측근들이 진술한 정치인들은 33명 이상이며 검찰이 나름의 「여과 과정」을 거쳐 발표함으로써 의혹이 제기됐다는 게 검찰 주변의 분석이다. 받은 돈의 액수가 적은 경우 리스트에서 뺐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 경우 검찰이 리스트를 자의적으로 선정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정씨와 그 측근들이 「부담없는」 인사들만 진술했으리라는 점이다. 정씨가 큰 신세를 진 사람, 정말 보호해야 할 사람은 털어놓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정씨의 로비 행태로 볼때 진짜 커넥션은 감춘 채 처벌이 불가능한 선거자금 수수 부분만을 털어놨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 관계 인사가 한 명도 없다. 정씨는 한보청문회에서 『관리들에게는 뇌물을 주지않았다』고 잘라말했다. 그러나 수서사건 등의 전례를 볼 때 정씨가 로비를 하면서 재정경제원, 은행감독원, 통상산업부 등 관련 부처의 고위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주지 않았을 것으로 보기는 매우 어렵다. 정씨가 진술했고 수수 금액이 큰데도 검찰이 정치권에 미칠 파장을 우려, 일부를 배제했다는 시각도 있다. 사실이라면 이는 예사롭지 않은 사건이다. 그 진위는 검찰의 정치인 소환 조사가 끝난 뒤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검찰이 1차 수사 때와 마찬가지로 정씨의 진술에 따라 수사의 맥을 잡아가다보니 한보 특혜대출 및 김현철씨 비리의혹이라는 수사의 본질을 그르치고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성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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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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