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시장의 이상기류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한편에선 남아도는 돈이 고여 있고 다른 한편에선 돈이 돌지 않아 자금난이 극심하여 부도가 속출하고 있다.자금사정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금융권은 돈이 남아돌아 신용 있는 대기업을 찾아 돈을 쓰라고 하지만 오히려 돈쓰기를 삼가고 있는가 하면 중소기업이나 한계기업은 자금난이 더욱 악화하고 있다. 대기업의 자금수요가 줄고 금융권에 돈이 쌓이자 시중 금리가 하락하면서 증시의 주가가 연일 상승세를 타고 있다.
이같은 이상 현상은 불황의 장기화와 부도방지협약의 부작용 파장이 겹쳐 꼬이기 시작했다. 여기에 금융통화 정책의 부재와 정책에 대한 불신이 더해져 왜곡된 자금시장이 풀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보 삼미사태이후 얼어붙은 대출창구가 풀리기도 전에 진로 대농이 부도방지협약 대상이 되자 제2금융권이 대출금 회수에 나섰다. 그 결과 한신공영도 빚 독촉에 손을 들고 법정관리를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대출에는 몸을 사리고 여신회수를 하다보니 돈이 금융기관에 쌓여 주체하기 어렵게 됐다. 우량기업들의 자금수요도 줄어 은행돈을 쓰라고 해도 쓰지 않는다. 따라서 당좌대출한도가 남아돌아 금리가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행복한 현상은 중소기업엔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돈이 제대로 돌지 않아 중소기업의 자금난은 가중되고 있다. 지난 4월의 부도율 0.25%가 중소기업사정을 잘 설명해 준다. 이 부도율은 15년만의 최고치이다. 자금이 넘친다는데, 그리고 금리가 내리고 있다는데 중소기업은 사각지대에서 돈 가뭄으로 고사하고 있는 것이다. 4월에만 하루에 53개 꼴로 쓰러졌다.
돈이 돌지 않고 제길로 흐르지 않으면 생산활동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소비자극 등 부작용만 낳게 마련이다.
특히 요즘 경기가 바닥을 치고 회복조짐을 보인다고 해서 희망에 부풀어 있다. 이럴때 자금시장이 정상화되어 생산 투자활동을 북돋워야 경기회복이 빨라지고 경제가 활성화 된다.
그럼에도 돈이 돌지 않고 금융권에 고여 있다. 기업의 자금수요가 없다는 것은 투자의욕이 꺾여 신규투자를 억제하고 있다는 뜻이다. 생산활동이 활성화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더욱이 산업의 기반인 중소기업이 한계에 몰렸다는 것과도 통한다. 결국 경기 회복에 찬물을 끼얹는 꼴이나 마찬가지다.
금리가 내려 가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알고 보면 불황지속과 투자위축의 다른 표시일 뿐이어서 반가운 일만은 아니다.
자금시장 상황이 이런데도 당국은 손쓸 생각조차 않고 있다. 자율과 시장경제논리를 존중해서만은 아니어서 더욱 안타깝다. 그러면서도 한은독립이니 감독권이니 해서 밥그릇 싸움만 벌이고 있다. 꼬여가고 있는 자금시장을 제대로 푸는데 눈을 돌려야 한다. 금융대란설을 잠재우는 길이 다른데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