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준법은행

한때「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크게 유행했었다. 수형생활을 하게 된자의 입에서 나온 이 말이 그렇듯 유행됐던 까닭은 우리나라의 법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법이라는 글자는 「물이 흘러 가는 것」을 뜻하는데 물길이 높은데서 낮은데로 흐른다는 것은 어린이들도 다 아는 상식이다. 법 또한 물흐르는 이치처럼 아주 상식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배운 사람들일수록 불법·탈법을 일삼으며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가고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돈과 힘으로 법을 꼼짝못하게 하는, 상식이전의 짓거리를 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배우지 못한, 돈없고 힘없는 사람들만 법망에 걸리게 되니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유행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통치자가 나라의 주인이던 시대는 법이라는게 통치수단이었고 따라서 법망에 걸렸다 하면 살아남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이제 법이 섬기는 주인은 백성들인 시대이다. 그러므로 법이 만인에게 공평치 못하면 국민들의 준법은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그리고 나라는 무법천지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불법·탈법의 작태가 매일같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그 불법·탈법자들은 출세와 부를 누리게 되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된다. 그리고 법을 지키면 바보가 되고 손해를 본다는 것도 실감하게 된다. 때문에 대부분의 국민들이 준법과 탈법(범법) 사이에서 갈등과 혼란을 겪게 되는 것이다. 이런 때에 툭하면 버스나 전동차가 「준법운행」을 한다며 시민들의 발을 묶어 놓곤 한다. 「준법운행」이라면 말 그대로「법을 준수하여 운행하는 것」일진대 어째서 법을 지키지 않고 운행하는 버스나 전동차를 타야만 제 시간에 출근할 수 있고, 약속한 시간에 출근할 수 있고, 약속한 시간에 대어갈 수 있게 되고… 하는 것인가. 전동차의 경우 승객들의 안전한 승하차를 위해 한 역에서 30초 동안 정거하게끔 열차시간표가 짜여져 있는 모양인데 그 30초를 지키며 전 구간을 운행하면 그만큼 열차의 배차간격이 뜰 수 밖에 없다는 것이고 버스도 주행속도, 정류시간을 정해진 규칙대로 지키면 전동차의 경우와 같은 결과를 낳게 된다. 정해 놓은 배차시간, 정류시간 등에 현실성이 없다는 얘기잖은가. 법을 지키는 것이 태업의 한 수단인 이 아이러니는 자칫 국민들에게 탈법과 불법을 권장하는 빌미가 되지않을까 우려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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