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CEO/대한항공 조양호사장] 불황 뚫고 큰폭 흑자

「74년 과장입사, 79년 이사대우, 89년 부사장, 92년 대표이사 사장...」일견 보아서는 꽤 성공한 한 직장인의 이력서다. 입사 19년만에 대표이사에 올랐다. 하지만 그 주인공이 그룹 창업주의 장남이라고 한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굳이 그렇게 먼 길을 돌아갈 이유가 있었을까?』 이력서의 주인공은 대한항공 조양호 사장. 그는 19년이라는 지리한(?) 시간동안 한 회사의 온갖 부서를 섭렵한 후 대표이사가 됐다. 창립 30주년을 맞는 대한항공의 오늘에는 趙사장의 구슬땀이 곳곳에 배어있다. 그래서 인지 오너 경영인이란 첫 질문에 『기업은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능력과 자격을 갖추어 키워나가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답했다. 「오너 경영인」은 그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다. 그는 『지금은 전문경영인 시대』라고 강조했다. 『업무에 대한 정확한 판단위에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능력이야말로 경영자의 기본조건』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경영에는 자신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趙사장이 대표이사를 맡은 후 대한항공의 경영성과는 그의 이런 자신감을 대변해주고 있다. 첨단 항공예약시스템 도입, 대규모 항공기지 건설 등 대한항공의 사사(社史)에 남을 큼직한 일들은 대부분 趙사장의 손을 거쳤다. 특히 IMF의 불황 속에서도 3,000억원의 흑자를 낸 지난해 기록은 세계 항공업계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아시아 각국의 경제위기로 지난해 필리핀항공이 도산한 것을 비롯해 일본 JAL을 비롯한 대부분의 항공사들이 대규모 적자를 냈다. 하지만 趙사장은 당시 우리경제 위기가 외환부족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간파, 외환수입을 높이고 해외자금 조달에 발벗고 나섰다. 그는 항공기를 매각한 후 이를 다시 임차하는 방식으로 바꾸어 외화를 벌었다. 또 해외 금융기관으로부터 낮은 금리로 자금을 빌렸다. 이렇게 해서 대한항공이 끌어들인 외화자금은 지난 한 해동안 10억4,000만달러. 어떻게 이런 흑자경영이 가능했는지 직접 물어보았다. -당시 우리나라의 신용도 하락으로 대부분 기업들의 외화조달이 어려웠는데 어떻게 가능했습니까? 그동안 대한항공이 해외에서 쌓아온 신용 덕분입니다. 회사의 재무구조가 건실한 점도 크게 작용했습니다. 대한항공은 부채비율이 외견상으로는 높아보이지만 100대가 넘는 항공기 도입에 따른 장부상의 부채일 뿐 입니다. 자산이 그만큼 많았기 때문에 외국 금융기관들이 자금을 빌려준 것이지요. -모두 빌려서 벌어들인 것은 아닐 텐데요? 물론입니다. 외화수입을 높이기 위해 내부적으로 구조조정도 단행했습니다. 비수익 노선을 과감히 철폐하고 제로베이스 예산제도를 실시해 불요불급한 투자를 억제했습니다. 이런 한편으로는 외국 관광객 유치와 해외시장 개척을 적극 추진했습니다. 그 결과 한국지역 운송수입은 97년 1조6,400억원에서 지난해에는 1조4,500억원으로 12%이상 감소한 반면 해외지역에서 수입은 1조6,200억원에서 2조1,000억원으로 30%나 증가했습니다. -대한항공이 올해 창사 30주년을 맞았습니다. 대한항공의 미래상은 어떤 것입니까? 21세기 국제항공업계를 선도하는 항공사라는 목표를 설정했습니다. 단순한 지역항공의 차원에서 세계를 무대로 도약한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런 목표달성을 위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서비스와 안전, 네트워크의 3박자를 모두 갖추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세계적인 항공사들과 제휴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결성하고 안으로는 신공항의 성공적인 건설 등 기초 인프라투자의 확대가 따라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세계 항공업계는 한 항공사가 전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수 개의 항공사들이 제휴해 거대한 네트워크를 구축해 그 연합체가 세계시장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대한항공은 미국 델타항공과 손잡고 새로운 얼라이언스 형성을 추진 중입니다. 수많은 항공사의 이름과 특징을 하나하나 나열하면서 설명하는 趙사장은 매우 합리주의자임을 느낄 수 있다. 그는 『기업은 눈 앞의 이익보다 장기적 안목에서 투자와 기술축적에 힘쓸 때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다』는 말을 자주 쓴다. 이런 그의 합리적인 사고는 장기투자를 아끼지 않는 대한항공의 투자행태에서도 잘 나타난다. 趙사장은 79년 김포공항 항공교통량의 폭증을 미리 내다보고 김해지역에 대규모 정비기지를 건립했다. 또 인터넷 대중화를 예견하고 마케팅 도구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런 투자에 힘입어 대한항공은 최근 인터넷 전자발권을 국제선까지 확대하고 있다. 趙사장은 소문난 국제통이기도 하다. 국제적 비즈니스인 항공산업의 탓도 있지만 『항공사 대표는 민간외교관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95년에는 항공업계의 국제연합(UN)이라고 할 수 있는 국제항공운송협회(LATA) 집행위원에 피선됐다. 전세계 항공관련 최고경영자단체인 「하늘의 정복자」 클럽의 정식회원이기도 하다. 이 단체 회원에는 동양인이 단 2명 뿐이다. 趙사장의 이같은 왕성한 활동력은 타고난 근면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업인이기 이전에 성실한 인간이 되라』는 부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한 눈 팔지 않고 회사에 중대한 사안이 발생했을 때에는 현장부터 달려간다. 창업주인 조중훈회장이 사업에 대한 천부적인 「감」과 「직관」으로 기업을 일으켜 왔다면 趙사장은 조직화, 시스템화로 경영하는 실증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또다른 30년을 맞이하고 있는 대한항공의 미래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민병호 기자, 사진=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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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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