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전세서민'이 있습니까

"지금 '전세 서민'이 있습니까. 서민들은 이미 월세로 살고 있습니다. 전세 세입자의 대다수는 집을 살 여력이 있지만 사지 않는 사람들이에요. 왜 정부 당국은 아직도 '전세 세입자는 서민'이라는 과거의 틀 속에서 정책을 구상하는지 답답할 뿐입니다."

며칠 전 만난 한 부동산시장 전문가는 최근의 전세난에 대해 얘기를 나누던 중 정부의 대책이 한심스럽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의 지적은 '불편한 진실'이다. 임대주택시장과 관련된 온갖 데이터가 그렇게 말해준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수도권의 월세가구 비중은 23.0%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서울은 25.7%로 4가구 중 1가구는 월세였다. 전셋값의 고공행진은 1년 내내 계속돼 서울의 경우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인 전세가율이 60%를 넘어서는 자치구가 속출하는 상황이다. 진짜 서민이 살았던 서울지역 1억원 미만의 전셋집은 이달 4만3,000여가구로 5년 전에 비해 70% 이상 줄었다.

돈은 있지만 매매를 기피하는 수요자들은 집주인의 요구대로 전셋값을 올려주며 계약을 연장하는 반면 그럴 여력이 없는 서민들은 일찌감치 월세로 밀려났다는 얘기다.


그런데 정부가 전세대책이라고 내놓은 것은 이런 시장상황과는 동떨어진 것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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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렌트푸어 지원 공약이던 '목돈 안 드는 전세제도'가 결국 이달 말 6개 시중은행의 관련 저금리 대출상품 출시로 도입된다. 서승환 국토부 장관의 1998년 논문 '전세제도의 파레토 개선: 목돈 안 드는 전세제도'를 통해 처음 소개된 지 15년 만에 현실화되는 것이다. 금융 당국도 맞장구를 쳤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3일 주택금융공사의 전세대출 보증한도를 1억5,000만원에서 2억원으로 확대하는 '4ㆍ1부동산종합대책에 따른 보안 방안'을 내놓았다.

서민이 살 만한 전셋집은 이미 월세로 돌아선 마당에 값싼 자금을 여유 있게 빌려줄 테니 전셋집 구해서 살라는 식의 대책은 도대체 누구를 돕겠다는 걸까.

임대주택 정책의 패러다임이 달라져야 한다는 시장의 목소리가 높아진 지 이미 오래다. 언제쯤 정부 당국이 이제 '전세 서민은 없다'는 인식 속에서 대책을 만들어 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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