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세수극대화 노린 무거운 간접세/기업 경쟁력 약화시킨다

◎승용차 5%·에어컨 9% 외산에 뒤져/당국선 “불합리하지만 손대기 어렵다”세계사에 악명을 떨친 세법 가운데 창호세란 것이 영국에 있었다. 1747년 시행됐던 창호세(Window Tax)는 「부자일수록 큰 집에 살고, 집이 크면 창문도 많다」는 점에 착안, 창문의 숫자만큼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내용. 당시 영국은 세수부족을 메우기 위해 이처럼 엉뚱한 입법을 했고 재무당국은 막대한 세수를 기대하며 희희낙락했다. 하지만 결과는 딴판으로 나타났다. 국민들이 세금을 줄이기 위해 창문을 막기 시작한 것이다. 징세를 원천봉쇄하겠다는 소극적 조세저항이다. 결국 창호세는 정부가 원했던 세수증대는 이루지 못한채 국민들이 햇빛쬐기를 포기토록 하는 역효과만 불러일으킨 채 폐지되고 만다. ○시대착오 조세정책 2백년이 훨씬 지난 오늘날, 영국의 창호세와 비슷한 세제가 우리나라에서도 존재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별소비세를 비롯한 온갖 명목의 간접세때문에 국민의 부담은 물론 기업의 경영활동이 심각한 지장을 받고 있다는 주장이 들끓고 있다. 특히 기업들은 『정부가 입으론 경쟁력 강화를 독려하고 있지만 시대착오적인 조세정책으로 기업의 뒷다리를 잡는 태도는 여전하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기업들은 특소세나 주세·교통세 등 이른바 간접세가 영국의 창호세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들 간접세는 소비자가 부담하므로 기업의 비용에 곧바로 반영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도입취지가 퇴색된 채 마구 남발한 간접세때문에 기업들은 판로확대에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 특히 지난해부터 시작된 경기침체로 소비가 급속히 위축되면서 기업들이 겪고 있는 판매부진의 늪을, 높은 세금이 더욱 깊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물량을 투입해야 하므로 간접세 역시 비용에 다름아니라는 주장이다. 특소세는 창호세와 「호형호제」할만한 수준이다. 특소세는 사치성 소비재를 대상으로 지난 77년 도입됐다. 당시만해도 컬러TV·냉장고·에어컨 등은 부유층이나 만질 수 있는 고급품이었기 때문에 「특별소비」세가 매겨질만 했다. 그러나 이제 컬러TV나 냉장고가 없는 가정은 찾아보기 힘들다. 보급률 1백%의 서민용 필수품으로 정착했다. 그렇지만 이들 제품에 대한 특소세는 여전하다. 결국 영국의 창호세와 우리의 특소세는 과세 대상의 차이만 있을 뿐, 세수 극대화만을 노린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의 산물이란 점에선 비슷한 작품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더구나 특소세의 과세기준이 국산보다 외제수입품에 유리하게 돼 있어 국산 제품의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도 작용하고 있다는게 업계의 주장이다. 컬러TV 등에 매기는 특별소비세의 경우 국산품은 제조원가에 홍보비를 비롯한 판매관리비, 생산자 이윤 등이 포함된 공장도가격을 기준으로 특소세를 부과한다. 반면 수입제품은 판매관리비 등이 제외된 통관가격을 기준으로 부과해 과표가 국산품에 비해 훨씬 작이진다. 내국세에서 국산품이 외제품에 비해 역차별받는 기현상이 온존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국산품의 특별소비세가 외제수입품보다 많아지면서 교육세와 부가가치세도 덩달아 늘어나 심할 경우 최종 판매단계에서는 국산품가격이 외제에 비해 평균 9%가량 부풀려진다. 외제품의 판매관리비와 유통마진이 국산품과 동일하다고 가정할 경우 특별소비세가 5%인 컬러 TV는 매출원가의 58%에 달하는 판매관리비용와 16%에 달하는 생산자이윤을 합쳐 특별소비세를 매긴다. ○「달리는 세금덩어리」 반면 외제품은 매출원가와 수입상 이윤이 제외된 통관가격만을 기준으로 적용돼 최종적으로는 국산제품이 외제품에 대해 6%가량 경쟁력이 떨어진다. 냉장고도 이같은 계산방법을 적용하면 7% 가량 경쟁력이 저하되며 승용차는 5%, 에어컨은 9%정도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자동차는 아예 「달리는 세금덩어리」나 마찬가지다. 자동차에 붙는 다양한 세금은 특정품목에 세금을 중과해 주요세원으로 삼고 있는 우리나라 조세정책의 고질적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자동차에 붙는 세금은 특소세·취득세·교육세·농어촌특별세·면허세·취득세·자동차세등 모두 12가지나 된다. 사실상의 세금인 도시철도채권 매입부담까지 합하면 13가지에 이른다. ○통상마찰 눈치보기 이름만큼이나 용도도 다양하고 관할부서도 많다. 난마처럼 얽혀있는 구조때문에 개혁도 어렵다. 이처럼 과다한 세금항목은 6종의 세금만 내는 일본이나 독일(4종), 미국(3종) 등에 비해 평균 두세배 이상 많은 것이다. 자동차 기업들은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넘어선 시점에서 특소세를 과세하는 것은 타당성을 찾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현행 세제의 세율체계도 상식에 어긋나는 경우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국민들이 즐겨마시는 맥주는 주세가 1백50%인데 비해 훨씬 비싼 위스키는 1백25%로 오히려 세율이 낮다. 유럽 등 외국과의 통상마찰을 회피하기 위해 정부가 「눈치보기」 조세정책을 편 후유증이다. 주무부처인 재정경제원도 일부 간접세가 비합리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행 재정여건상 이를 섣불리 손대기는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자동차·주류·가전제품 등에서 걷히는 특소세가 전체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높아 잘못 건드렸다가는 세수부족을 초래하기 십상이라는 설명이다. 재경원의 잠정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징수된 국세는 대략 64조9천6백억원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55.6%인 36조1천2백억원 가량이 간접세로 충당됐고 44.4%가 직접세였다. 직접세는 지난 93년 45.5%에서 94년 45.7%, 95년 46.8%로 계속 높아지다가 지난해 44.4%로 다시 떨어졌다. 정부가 그동안 직접세 비중을 계속 높여온 이유도 조세이론상 간접세는 소득이 낮은 사람이 세금을 오히려 더 많이 무는 조세귀착의 「역진성」때문이었다. 그런데 지난해에는 무슨 이유때문인지 이같은 역진성 해소노력이 느슨해지는 징세결과를 빚고 말았다. 지난해 국내 주당들이 납부한 주세는 2조원(맥주 1조4천억원, 소주 2천2백억원, 위스키 2천6백억원 등)에 이른다. 특소세는 3조1천억원(가전제품 1조원, 자동차 1조2천억원, 석유류 4천억원 등)이 걷혔다. 휘발유와 경유 등에 부과되는 교통세도 4조8천억원에 이르렀다. 부가세를 제외한 이들 간접세만 합쳐도 10조원에 이르는 규모다.<한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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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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