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불황기 CEO의 역할
한창수
한국경제가 저성장 단계로 접어들고 기업간 실적이 양극화하면서 또 한번의 혹독한 구조조정을 예상하는 견해들이 나오고 있다.
현대 경영환경의 특징은 위기가 쉴 새 없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이제 기업은 한두 차례의 구조조정으로 위기를 졸업할 수 없게 됐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경영에서 최고경영자(CEO)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적으로 증대하리라는 것이다.
성공기업일수록 긴장감 높아
기업에 어려움이 닥쳤을 때 CEO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임직원들에게 지속적으로 위기의식과 긴장감을 심어주는 일이라 생각된다. 기업의 형편이 어려워지면 임직원들은 당연히 긴장감과 위기의식을 갖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겠지만 뜻밖에도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근무자세가 더욱 태만하며 조직분위기가 해이해지는 경우가 많다.
나는 최근 국내의 성공기업들과 부실화된 기업들을 연구하면서 묘한 아이러니를 발견했다.
그것은 성공기업일수록 위기의식과 긴장감이 팽배한 반면 부실화된 기업일수록 위기의식도 긴장감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는 그 반대여야 할 것 같은데 실제 접해보면 상식과 다르다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다.
가령 올해 사상 최대의 실적을 달성한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경영자들은 자만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감에 부풀어 있을 만도 한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한결같이 ‘지금은 위기상황’이라는 말을 되뇌이고 있었다. 이게 웬 엄살인가 싶어 반도체사업이 왜 위기인지를 물어봤더니 저마다 그럴 듯한 이유들을 나열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정은 도요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도요타의 조직분위기는 언제나 “오늘이 아무리 좋아도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라는 평범한 한마디로 요약된다. 잘나갈 때도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것이 성공하는 기업들의 특징이다.
불황기의 CEO는 조직에 위기의식과 긴장감을 심어줘야 할 뿐 아니라 스스로 조직의 구심점이 돼야 한다. 기업의 형편이 어려워지면 임직원들은 누구나 CEO를 바라보게 돼 있다. 이럴 경우 CEO는 화려하기보다는 실질적이고 소박한 편이 좋다. CEO의 실질강건(實質剛健)한 모습은 그 자체로 임직원과 함께 어려움을 감내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된다.
그리고 CEO의 메시지는 단순 명료해야 한다. 복잡한 조항들을 늘어놓기보다는 조직 전체를 관통해 모든 임직원이 이해할 수 있는 간명한 원칙을 고수하는 편이 효과적이다.
단순하고 명료한 원칙은 신뢰를 가져온다. 지난 90년대 IBM을 회생시킨 루 거스너는 재직한 10년 동안 줄곧 ‘조직 내부의 유연성과 시너지’를 집중적으로 강조했다.
22년간 GE를 이끌었던 잭 웰치도 경영원칙은 매우 단순했다. ‘GE 내에는 업계 1등 아니면 2등 사업부만이 살아남는다’ ‘대기업이면서 중소기업처럼 빠르고 단순하게’가 그것이다.
간명한 조직목표 제시해야
기업이 어려움에 처한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해결은 오직 한 가지로부터 시작하는 편이 낫다. 복잡하게 꼬인 실타래도 결국에는 단 한 가닥에서 풀려나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CEO가 제시하는 방향이 항상 옳을 수는 없다. 그러나 CEO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하고자 하는 임직원들의 욕구를 분출시켜줄 수 있어야 한다.
경영형편이 어려운 기업의 임직원들은 대개 자신들의 에너지를 쏟아 부을 하나의 목표점을 찾는다. 그것이 바로 단순명료한 전략과 비전이 필요한 이유이다.
입력시간 : 2005-01-09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