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사는 아파트에서 보면 21층짜리 팬택 본사 사옥이 한눈에 들어온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이 건물은 종일 불이 꺼지지 않았다. 숙취 탓에 새벽녘에 깨 물 한잔 마시며 지켜볼 때도 환하게 켜져 있었던 적이 많다. 연구개발(R&D)센터 기능도 겸했으니 연구 인력들이 밤을 새며 휴대폰 개발에 매달리고 있었을 것이다. 항시 밝은 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본 아내까지 그들의 열정을 인정할 정도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하나둘 불빛이 사라지더니 이제는 어스름이 내리면 잿빛 빌딩으로 변한다. 매각작업이 무산되자 어둠이 더 짙어진 느낌이다.
지난달 27일 한 언론에 눈길을 끄는 광고가 실렸다. '우리의 창의와 열정은 계속됩니다'라는 큼지막한 카피 밑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이어진다. '지금 팬택은 멈춰 서지만 우리의 창의와 열정은 멈추지 않습니다. 팬택을 사랑해주신 모든 분들을 우리는 잊지 않겠습니다' 그 아래로 1,200여명의 팬택 임직원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제품을 써준 고객들을 향한 직원들의 작별인사였을까. 절절한 마음이 담긴 광고를 보는 순간 먹먹한 느낌이 든 것은 기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바로 전날 팬택은 법원에 기업회생절차 폐지를 신청했다. 실낱같은 희망의 끈마저 놓기로 한 것이다.
지난 4일 팬택 사원 10여명이 벤처기업협회를 찾았다. 벤처창업기업 지원을 위한 기부금 전달식을 갖기 위해서다. 마지막 광고를 게재한 언론사에서 비용을 받지 않기로 하자 그 돈을 기부하기로 한 것이다. 금액은 500여만원. 휴직자를 포함한 임직원들이 5,000원, 1만원씩 십시일반으로 마련했다. 팬택을 잇는 훌륭한 벤처기업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에 기부를 결정했다고 한다. 인정이 있고 진정성 있고 열정이 있는 '삼정(三情)' 기업이었기에 가능했지 싶다. 협회는 이 소중한 돈을 스타트업 지원을 위한 엔젤투자펀드 구성에 활용하고 팬택 직원들의 창업교육과 재취업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온 국민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공포에 떨고 있는 사이, 샐러리맨 신화·벤처신화의 상징이었던 팬택이 영욕의 역사를 뒤로 한 채 청산절차를 밟을 모양이다. 박병엽 전 부회장이 아파트를 팔고 남은 돈 4,000만원을 종잣돈 삼아 창업한 지 24년 만이다. 쟁쟁한 대기업들 틈바구니에서 오직 기술력만으로 성공신화를 썼던 한국 벤처사의 산증인이 사라지는 것이다. 팬택은 창업을 꿈꾸는 월급쟁이들의 롤모델이었다. 그래서 더욱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국내 최초 카메라폰(2001년)·최초 슬라이드폰(2002년), 세계 최초 지문인식폰(2004년) 출시 등 팬택이 보유한 '최초' 타이틀은 수두룩하다. 지금도 4,600여건의 등록특허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약 1만4,000건의 출원특허를 가지고 있다. 특허왕국이라 불릴 만하다. 2006년 매출 3조원으로 글로벌 기업 반열에 오른 것은 피와 땀의 결과였다.
하지만 이런 화려한 기억이 무슨 소용 있겠는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 마당이니. 팬택의 몰락 원인을 두고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경영전략의 실패니, 마케팅의 실패라는 등 다양한 의견이 나온다. 정답이 무엇이든 약육강식의 기업생태계에서 밀려난 패배자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렇더라도 팬택이 남긴 도전정신은 계속돼야 한다. '쉽지 않은 게임'이라며 모두 고개를 젓는데도 삼성·애플 등 글로벌 강자에 끊임없이 도전장을 내밀었던 게 그들이기 때문이다. 경쟁업체에 자극을 주고 정보기술(IT)산업 발전의 촉매제 역할을 훌륭히 해내지 않았는가. 무엇보다 벤처 활성화가 절실한 지금 팬택의 창의와 열정은 귀중한 자산이다. 실패에서 교훈을 얻는 것과는 별개로 '팬택 정신'을 계승·발전시키는 것은 이제 우리의 몫이 됐다. 끝까지 열정을 보여준 임직원들의 앞날에 행운과 축복이 함께하기를 바란다.
임석훈 논설위원 shi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