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공정위, 네이버·다음에 사실상 백기

'동의의결' 첫 수용… 수백억 과징금 면제 길 열어줘<br>"포털 솜방망이 규제" 지적도

포털업체인 네이버와 다음의 불공정거래를 조사해온 공정거래위원회가 사실상 ‘백기’를 들었다. 양 업체가 제시한 ‘셀프 시정’ 조치를 받아들이기로 해서다. 이에 따라 네이버와 다음은 수백억원의 과징금 부담을 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포털업체에 대한 공정위의 규제가 ‘솜방망이’에 그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네이버와 다음의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피해를 입었다고 느끼는 소비자들은 이르면 다음달부터 구체적인 피해 사항을 공정위에 접수해 보상을 받을 길이 열린다.

공정위는 27일 세종청사에서 전원회의를 열고 네이버와 다음이 신청한 ‘동의의결’을 허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동의의결은 사업자(피심인)가 원상회복 또는 피해구제 같은 시정방안을 제시하고 타당성이 인정될 경우 공정위가 위법성을 따지지 않고 사건을 마무리 짓는 제도다. 잘못을 인정하는 대가로 처벌을 면해주는 제도인 셈이다. 공정위가 동의의결을 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철호 공정위원은 “인터넷 검색은 국민의 일상생활과 밀접히 연관돼 있어 신속한 경쟁질서 회복이 필요하고 동일ㆍ유사 사안에 대해 해외 경쟁당국도 동의의결 절차를 적용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열린 전원회의의 쟁점은 해당 사건이 동의의결 개시 요건에 해당하는지와 업체들이 제시한 시정조치가 적정한지 여부였다.


우선 개시 요건에 대해 양 업체는 ▦인터넷 서비스 분야는 위법성을 판단하기 어려운 영역이고 ▦구글 등 외국사업자가 조치대상에서 제외돼 국내 사업자들이 역차별로 인한 경쟁력 저하 우려가 있어 신속한 처리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하게 주장했다. 사건을 조사한 공정위 시장감시국은 당초 신속한 사건 처리가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공감했으나 셀프 시정이 아닌 심의 절차를 밟아야 실효적 규제가 나타날 수 있다고 주장했었다. 하지만 전원회의가 동의의결 개시를 결정하면서 시감국이 ‘헛심’을 쓴 꼴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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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와 다음이 제시한 시정안이 적정한지를 둘러싼 격론도 이어졌다. 시정안에는 소비자들의 피해를 구제할 수 있는 수준의 구제방안이 제시돼야 하는데 이 금액 규모를 정확히 제시하지 않아 업체들이 적정한 성의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상임위원들의 질책이 이어졌다.

검색결과와 광고를 구분하지 않아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양 업체는 광고에 대해서는 음영을 넣는 식으로 도드라지게 표현해 광고와 정보를 구분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놓겠다고 답변했다.

공정위가 동의의결 개시를 승인함에 따라 네이버와 다음은 잠정 시정안을 1달 안에 마련해 공정위에 제출하게 된다. 이후 공정위와 미래창조과학부ㆍ검찰 등 관련부처의 협의(1~2달)를 거쳐 최종동의의결안이 만들어지면 시정안이 본격적으로 이행된다. 다만 이 과정에서 시정안이 불충분하다고 판단될 경우 사건은 원점으로 돌아와 다시 심의 절차를 밟게 된다. 시정안이 확정되면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은 공정위에 피해사례를 접수해 피해를 보상받을 길이 열리게 된다. 지 위원은 “직접적인 피해가 입증된다면 이를 포털업체들이 보상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초의 동의의결 개시를 두고 공정위 내부에서는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시감국이 심사보고서까지 발송한 사건을 전원회의가 뒤집은 모양새가 되면서 모양새를 구긴 셈이 됐다”고 말했다. 반면 또 다른 관계자는 “공정위가 징세 기관도 아닌데 과징금 부과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면서 “실효적 피해구제방안이 나온다면 이 조치가 더 바람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네이버는 이날 공식성명을 내고 “정보기술(IT) 산업의 동태적 시장 특성 등을 충분히 고려한 공정위의 개시 결정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다음 역시 “동의의결 신청이 수용된 만큼 합리적인 개선방안 보완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서일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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