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이종남 감사원장

"공적자금 회수보다 경제회생 중요"대담:김준수 정경부장 jskim@sed.co.kr "외환위기가 시작되던 97년말 현재 자산규모가 2,500억원 이상인 998개 기업이 쓰러져 80조원 상당의 돈을 빌려 준 은행, 제2금융권 등은 부도날 판이었습니다. 당시 외환보유고는 38억 달러에 불과했습니다. 5개 은행이 문을 닫고 2만5,000여명이 은행에서 감원됐습니다. 이런 어려움 가운데 공적자금을 투입, 우리는 국제통화기금(IMF)을 당초 예상보다 2년 8개월이나 앞서 3년 만에 졸업했습니다. 공적자금과 관련해 과정상 실수는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잘됐다고 봅니다." >>관련기사 공적자금 특감을 통해 그 내용을 샅샅이 관찰한 이종남 감사원장은 이 분야에 관한한 어느 경제전문가 못지 않은 식견을 보였다. 이 원장은 돈을 빌려주자 마자 떼일까봐 회수에 급급하는 부류와는 달랐다. 공적자금을 '투자'의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공적자금 특감을 끝내고 얻은 그의 결론이었다. 이 원장은 "공적자금을 둘러싼 부정적인 측면만 과도히 부각돼 경제에 악영향을 줄까 걱정"하면서도 "부실 기업주의 소유ㆍ은닉 재산을 찾아내 국민 부담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감사원장실에서 이 원장을 만나 공적자금을 둘러싼 여러 논란에 대한 입장 및 소신, 앞으로의 감사계획 등을 들어 봤다. -먼저 최근 발표된 공적자금 감사 결과에 의하면 공적자금 관리가 총체적으로 부실해 국민 부담을 가중시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번 특감을 끝내며 특별히 느끼신 점이 있으십니까. ▲'기업은 망해도 기업인은 잘 산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150조원에 달하는 공적자금이 투입됐고 감사 결과 많은 문제점이 나타났습니다. 이 모든 것이 국민의 부담으로 전가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국민들의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습니다. 부실 기업주가 소유 혹은 은닉한 재산을 찾아 환수해 국민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감사에 임했습니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기관의 지원을 받은 부실기업의 임원 등이 7조원 가량의 재산을 국내외에 빼돌리거나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빚을 갚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또 일부에서는 금액의 정확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일부 언론의 보도에 착오가 있었습니다. 부실 기업주들이 마치 '7조원의 공적자금 을 빼돌린 것'처럼 알려졌습니다. 7조원은 공적자금이 아니라 소유재산이며 해외로 빼돌린 금액은 4억달러(약 5,000억원)에 불과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외환관리법에 의거, 검찰이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부실 기업주들이 소유한 나머지 6조여 원의 재산은 사실 감사원에서도 정확히 산정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부동산의 경우에는 기준시가로 계산했으며 주식은 비상장일 경우 액면가로 환산했습니다. 의도적인 부풀림은 없습니다. -공적자금과 관련해 정책 결정자들의 실수를 처벌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고위 정책 책임자를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는 의문과 함께 그들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습니다. ▲재경부가 1차로 64조원을 조성하면서 추가적인 조성이 없을 것임을 공언한 것이 식언이 돼버렸습니다. 정치권에서는 1차로 100조원을 조성했다면 더 나았을 것이란 주장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적자금이 곧 국민부담으로 인식되던 때에 한 해 예산에 가까운 공적자금을 발행한다는 것은 무리한 발상입니다. 물론 시장에서 소화도 불가능한 물량입니다. 정책적 판단에 관한한 지금의 잣대로 당시를 쉽게 재단할 수는 없습니다. 공직자들의 소신있는 업무 수행을 위해서도 이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벌써부터 감사 이후 공직자들의 복지부동의 근무 행태가 비판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저희는 국회 보고서에서도 정책판단에 관해 법적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또 장관을 비롯한 고위 정책 결정자들은 서면을 통해 충분히 조사했다고 생각합니다. 조사에 응한 모든 정책 결정자의 의견은 모두 장관의 결재 사항인 점도 고려해야 하겠지요. -감사기관으로서 이번 특감을 진행하면서 아쉬운 점이 있었는지요. 입장을 바꿔 피감 기관들은 '중복 감사'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부실은행을 조사할 수 없어 감사권이 제약받는 측면이 있습니다. 재정 경제부에 부실은행 조사권한을 요청할 생각입니다. 계좌 추적권은 3년 전 법을 개정할 때 감사원의 권한에 포함시키려 했으나 정부 부처의 동의를 구하는 데 실패했었습니다. 일선 피감 기관의 입장에서는 재경부, 금감원 등의 조사도 있기에 그런 불만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가 비효율을 불러선 아무 효과가 없습니다. 중복 감사가 되지 않도록 필요할 경우 합동감사를 실시할 것입니다. 감사원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1년에 1번의 감사만 실시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건교부의 항공 안전 2등급 파문이 예외에 속합니다. -제일은행의 헐값매각에 대해 감사원의 지적이 미흡하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17조5,000억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했고 풋백옵션 방식으로 매각해 추후 부실에 대한 손실을 보전해야 하는 등 문제가 많았다는 지적입니다. ▲구제 금융 체결 당시 제일은행을 매각해야 한다는 내용이 협의문에 포함돼 있었습니다. 다른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제일은행이 부도가 났다면 27조원의 자금이 투입됐을 것이란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당시 뉴브리지 외에 홍콩 상하이가 포기 의사를 밝힌 상태에서 대안이 없었습니다. 제일은행의 매각으로 싼 이자로 외국자본이 유입되고 국제 신인도가 향상된 측면이 있었습니다. 구조조정에 대한 IMF의 신뢰를 얻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이 사건이었습니다. -공적자금을 국민 부담이란 관점에서만 접근하지 않나 하는 느낌도 드는데요. 공적자금을 투자라는 관점으로 볼 필요성도 있지 않을까요. ▲옳은 지적입니다. 공적자금은 위기 상황에서 금융기관도 살리고 기업도 살리는 투자의 개념입니다. 야당은 회수율이 지난 10월 현재 25%에 불과하다며 비판하지만 일본은 17%로 더 낮습니다. 공적자금 중 30조원은 예금자의 손해를 방지하는데 썼고 70조원은 출자로 전환한 자금입니다. 50조 가량은 부실채권을 매입하는데 소요됐습니다. 투자 마인드로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수술로 중병을 살리는 데 치중해야지 수술비를 되돌려 받겠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혀서는 안됩니다.이와 관련해 특감 이후 금융종사자와 공직자들이 감사를 의식해 책임을 회피하는 등 업무를 소신껏 수행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 걱정입니다. 회수보다는 경제 회생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감사원이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십니까. 앞으로 감사 방향이라든지 특별히 신경을 쓰시고 있는 점이 있다면 밝혀 주십시요. ▲감사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 입니다. 하나는 잘못된 사항을 지적해 보다 주의하고 업무에 철저를 기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모범 사례를 발굴해 격려함으로써 더욱 업무에 열중토록 유인하는 것이지요. 지난해에는 음지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육종 연구자 등 숨은 일꾼들을 발굴, 표창했습니다. 올해도 80명을 선정, 표창하였습니다. 후문으로는 표창을 받은 공직자들이 더욱 자부심을 갖고 업무에 열중한다고 해 흐뭇함을 느낍니다. 앞으로 감사원은 처벌만을 위한 감사가 아니라 시스템을 보완하고 잘 된 사례는 적극 격려ㆍ후원하는 감사가 되도록 힘쓸 것입니다. -감사원이 감사결과를 모두 공개하는 것이 공익에 전적으로 부합하는가 하는 의문도 있습니다. 과거에는 대통령에게만 감사 결과가 보고되는 시절도 있었습니다. ▲국민들이 감사 결과를 알아서 좋은 점도 있지만 나쁜 점도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너무 많은 점이 공개돼 정부 정책의 혼선을 초래하고 해외 신인도도 하락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이번 감사에서도 나쁜 점이 유난히 부각돼 금융업 종사자의 사기가 떨어지고 기업 금융이 위축되는 문제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점을 유의해야 겠지요. 국방관련 감사도 특성상 비밀이 많아 공개하기 어렵습니다. 다른 예로는 광우병과 관련한 식약청 감사와 부산 아시안 게임 조직위의 계약 건이 그런 경우일 것입니다. 정리=이상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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