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부실기업 구조조정(기업개선작업ㆍ워크아웃) 작업에 빨간불이 켜졌다. 워크아웃 개시 절차를 규정한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 부활이 국회 문턱에서 좌절됐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부실기업의 원활한 구조조정을 위해서는 기촉법 재입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법무부는 "위헌소지가 있다"며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국회도 법무부의 손을 들어주는 형국이다. 전문가들은 법안의 기본인 '위헌소지'조차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채 부처 간 이견까지 있는 상황에서 국회를 통과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결국 올해 구조조정이 예상되는 40여개의 기업은 기촉법 부활이 실패할 경우 워크아웃 절차를 거치지 못하고 자칫 자금부족으로 넘어지는 상황이 불가피하다. 부처 간 이견도 해소하지 못한 안이한 입법과정으로 국회에 발목이 잡히며 기업 구조조정에 비상이 걸린 셈이다. ◇국회 '위헌소지'부터 해결해라=6일 국회와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지난주 열린 정무위원회 법안 소위는 기촉법 재입법을 일단 보류하기로 결정했다. "위헌성 있는 법안을 또 다시 한시적으로 도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법무부 측 의견을 반영한 것이다. 당시 회의에서는 기촉법 재입법을 요구하는 금융위원회에 대해 국회의원들의 강도 높은 질타가 이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위는 이번 기촉법에 워크아웃 개시 단계에서 채권단이 부실징후 기업과 사전협의를 거치도록 하고 진행 단계에서도 조정신청권을 부여하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기존 기촉법이 채권단 75%(신용공여액 기준)의 동의만으로 워크아웃 개시를 일방적으로 개시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어 기업의 자율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을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국회에서는 이 조항에 강제성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또 워크아웃에 반대하는 소수 채권단의 재산권을 침해할 위헌소지가 있는 만큼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관치논란'에 발목 잡혀=금융위 측은 부실기업 구조조정의 효율성을 위해서는 기촉법 부활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올해 워크아웃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은 40여곳으로 추정된다. 당장 기업들에 대한 금융기관의 상시 신용평가가 마무리되는 오는 6월부터는 부실기업에 대한 워크아웃이 본격화된다. 금융위는 최근 소수 채권기관의 대부분인 제2금융권의 신용공여 비중이 갈수록 늘고 있어 기촉법 재입법이 늦어질 경우 워크아웃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기촉법이 없는 상황에서는 채권단 100%의 동의를 얻어야만 워크아웃 개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금융위의 한 관계자는 "제2금융권의 동의를 얻기가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시간도 오래 걸려 해당 기업이 자금부족으로 쓰러지는 최악의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무부와 일부 국회의원들은 "기존 기촉법은 워크아웃 개시 과정에 금융당국의 입김이 작용할 소지가 많이 개선이 필요하다"며 금융위 측 주장을 일축했다. 부실징후 기업에 대해 주채권 금융기관이 워크아웃 개시 등 절차에 착수하지 않을 경우 금융당국이 해당 금융기관에 징계를 할 수 있도록 한 기촉법 조항을 문제 삼은 것이다. 한 정무위 소속 국회의원은 "금융당국이 금융기관을 통해 정부에 밉보인 기업을 강제로 워크아웃으로 몰아넣는 수 있다"며 "이는 금융당국에 과도한 권한을 부여한 것으로 관치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금까지 뭐했나"질타=지난 2001년 첫 도입 때부터 '위헌성' 논란이 있었던 기촉법 부활을 주장하는 금융위의 안이한 태도를 문제 삼는 의원도 있었다. 한 국회의원은 "기촉법은 당초 부실기업의 신속한 구조조정을 위해 위헌논란에도 불구하고 불가피하게 도입됐는데 이번 개정안도 크게 바뀐 게 없다"며 "기촉법 시한이 만료될 때마다 아무런 대책 없이 연장만을 고집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금융위를 질타했다. 최근 기촉법 부재로 워크아웃 일정에 차질이 빚어진 진흥기업 사례를 두고도 금융위와 법무부는 '아전인수' 식 해석을 내놓으며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금융위 측은 "지난해 정기국회에서 기촉법이 연장됐더라면 진흥기업 워크아웃이 보다 신속하게 진행됐을 것"이라며 국회를 설득하고 있다. 하지만 법무부는 "진흥기업 워크아웃이 다소 늦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결과적으로 채권단들의 협의 하에 사적 워크아웃이 진행되고 있다"며 "이는 기촉법 없이도 시장의 자율적 판단 하에 워크아웃이 가능하다는 반증"이라고 반박했다. 지난 10여년간 금융시장에 구조조정 경험이 충분히 쌓인 만큼 더 이상 기촉법을 부활시킬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국회 안팎에서는 다음달 임시국회가 또다시 열리더라도 기촉법 부활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정무위 소속의 한 국회의원은 "금융위와 법무부 간 이견 차이가 계속되는 한 정무위에서 기촉법 재입법을 통과시키더라도 법사위에서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며 "어떤 형태로든 두 기관이 타협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다음 국회에서도 같은 논란이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