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더블클릭] 총알보다 빠른 열차


'화륜거 구르는 소리는 우레와 같아 천지가 진동하고 기관거의 굴뚝 연기는 반공에 솟아오르더라…수레 속에 앉아 영창으로 내다 보니 산천초목이 모두 활동하여 닿는 것 같고 나는 새도 미처 따르지 못하더라.' 우리나라 최초의 열차 '모갈 1호'가 노량진~제물포 간 33.2㎞의 경인선을 달리는 모습을 독립신문은 1899년 9월19일자 3면에서 이와 같이 표현했다. 기껏해야 도보나 인력거ㆍ가마가 교통수단의 거의 전부였던 구한말 시속 20~22㎞의 열차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초고속 달구지였다.


△현재 모습의 고속열차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54년 도쿄올림픽 때 등장한 일본의 신칸센(新幹線). 당시 도쿄~오사카 구간을 시속 270㎞로 2시간도 채 못돼 주파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후 고속열차는 갈수록 빨라져 프랑스 V150의 경우 2007년 시운전을 할 때 575㎞까지 속도를 높였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1시간도 채 안 걸린다. 우리 초고속열차인 KTX(최고 시속 300㎞)보다는 거의 2배 가까이 빠르고 일본의 신칸센700(시속 443㎞)이나 중국의 초고속열차 CHR380(시속 486㎞)도 못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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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모터스의 엘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가 최근 진공 튜브를 통해 열차를 시속 1,200㎞로 달리는 '하이퍼루프' 설계안을 공개했다고 한다. 안전을 감안하지 않는다면 시속 2,700㎞도 넘어갈 수 있다는 게 머스크의 주장이다. 시속 1,200㎞인 음속보다는 두 배, 소총의 총알 발사 속도(시속 2,000㎞)보다도 훨씬 빠르다.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보던 꿈의 열차가 실현 가능한 현실로 다가왔다.

△하지만 이 열차에서 속도 외에 다른 것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영화 '설국열차'에서 주인공인 남궁민수가 차창 밖 풍경을 보면서 품었던 희망이나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친구와 고향을 떠올리던 우리의 추억은 어두컴컴한 터널과 무시무시한 속도 앞에 존재하기 어렵다. 그렇지 않아도 뒤돌아볼 겨를 없이 항상 앞만 바라보며 바쁘게 살아온 인생. 새로운 발명품이 우리를 더욱 빠르고 편리하게 만들겠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을 빼앗아가는 것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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