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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40년 넘게 산 사람들이 많아요. 나도 이곳에서 산지 20여 년 됐습니다. 호형호제 하던 사람들이 개발 바람이 불고 나서는 편이 갈려 원수 사이가 됐죠. 구역지정 해제가 결정된 후 이 곳을 떠나려는 이가 부지기수입니다." (서부이촌동 주민 Y씨)
코레일의 토지대금 반환으로 오는 9월 구역지정 자동 해제를 한 달여 앞둔 서부이촌동 일대 단독주택가. 지난 주말 기자 찾은 이 지역은 개발 무산의 상처만 남아 있었다. 자극적인 문구로 마을 골목골목을 채우고 있던 대부분의 현수막은 치워졌지만 텅빈 상가들은 을씨년스러웠다.
이지역 B공인 관계자는 "지난주 전세를 구하러 왔던 손님들이 인근에서 용산개발사업 관련 시위를 보더니 손사래를 치며 돌아갔다"며 "살던 사람도 나가려는 판인데 외지인이 들어와서 살겠다고 하겠느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이 무산된 이후 서부이촌동의 집값은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 치고 있다.
28일 경매정보전문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현재 경매가 진행되고 있는 서부이촌동 소재 물건은 모두 12건. 이촌동 일대 전체 경매 물건 17건 중 대부분을 차지한다. 용산 사업이 무산되면서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 사이 임의경매와 부실채권(NPL) 물건으로 쏟아지고 있는 것.
용산개발 계획 발표 이듬해인 2009년 80.9%에 달하던 경매 낙찰가율도 2013년 현재 53%까지 떨어졌다. 감정가의 반값 수준에 팔리고 있는 셈이다. 2008년 실거래가 13억원이었던 이지역 대림아파트 84㎡는 지난 3월 경매에서는 6억4,800만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12건 중에서도 2회 유찰돼 최저 낙찰가가 감정가의 64%로 떨어진 물건이 6건이나 된다.
하유정 지지옥션 연구원은 "지난해 책정된 공시가격에 용산개발계획을 포함하고 있다 보니 감정가가 높게 산정된 것도 낙찰가율이 급격히 떨어진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감정가가 9억원인 북한강성원아파트 59㎡는 1차례 유찰돼 최저 입찰가가 7억2,000만원이지만 지난 6월 5억5,000만원에 실거래됐다.
일반 중개업소에도 개발 무산에 따른 실망 매물이 등장하고 있다. 지난 6월 5억5,000만원에 거래된 북한강성원아파트 역시 대출로 허덕이던 집주인이 내놓은 초급매물이란 것이 인근 중개업소의 귀띔이다. 지난 2008년 10월 이후 거래가 끊겼던 이 일대 연립ㆍ다세대도 지난 6월 한꺼번에 3건이 거래 되기도 했다.
이지역 B공인 관계자는 "불확실성 탓에 매도ㆍ매수자 모두 신중하다"며 "좋든 나쁘든 9월 구역지정 해제가 이뤄지면 거래가 활발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230여 곳의 상가 세입자들의 피해는 더 심각하다. 우편집중국, 철도기지창 등의 이전으로 상권이 급격히 쪼그라들면서 매출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피해를 보상받을 길조차 막막한 상황이다. 법무법인 한우리가 주민들의 신청을 받아 서울시와 드림허브를 상대로 지난 6월 제출하기로 했던 피해보상 소송도 아직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주민 A씨는 "보상문제도 그렇고 구역지정 해제를 서둘러 달라는 주민들의 요구조차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며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며 "사업을 시작할 때는 법까지 만들었다가 지금은 법이 없다는 말만 하니 답답할 노릇"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