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은 물론 지역 균형발전 측면에서도 낙제점을 받은 철도ㆍ도로 등 23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이 버젓이 진행되고 있다. 2조원 규모의 인덕원~병점 전철사업과 안동~영덕 고속도로, 부산해양종합공원(5,473억원) 사업 등이 그 예다. 국책사업의 예산낭비를 막기 위해 시행 중인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가 정치인들의 선거공약과 지역구 챙기기에 밀려 무력화한 탓이다. 이럴 거면 뭐하러 제도를 도입했는지 의문이다.
더 큰 문제는 박근혜 정부에서도 이 같은 불상사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125개 지방공약 중 34개 SOC 사업이 특히 그렇다.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지난 7월 '지방공약 가계부'를 새누리당에 보고하면서 "타당성이 부족한 신규 사업은 사업계획을 수정해서라도 꼭 추진하겠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가 사업추진 여부를 결정하는 구속력 있는 기준이 되도록 관련제도를 손질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고 있다. 나라살림을 거덜낸 경제부총리라는 오명을 남기고 싶지 않다면 정치권과 지자체 등의 압력을 막아내는 '건전재정 지킴이'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할 것이다.
예비타당성 조사는 총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이고 국가재정 지원이 300억원 이상인 신규 사업 중 일정요건에 해당하는 경우에 실시한다. 하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어 '타당성 없음' 판정을 받더라도 집권세력이나 유력 정치인이 밀면 되살아나는 경우가 적잖다. 우선순위가 크게 떨어지는 23개 사업에 11조원이 넘는 혈세를 투입해야 하는 부조리를 수술하지 못하고 대선공약이라는 이유만으로 예산소요가 큰 사업들을 덜컥 추진한다면 두고두고 우리 경제에 짐이 될 수밖에 없다. 23개 사업에 올해까지 3,300억원의 예산을 지원했다고 하니 지금이라도 원점에서 재검토해 혈세누수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4대강 보ㆍ준설 같은 사업들이 예비타당성 조사라는 그물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조사면제 요건도 강화하고 절차도 투명화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