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동십자각] 사람만 자른다고 해결되나

09/23(수) 18:12 李世正정경부차장 『우리 지점은 인건비, 물건비 다 빼고도 그동안 흑자를 내왔는데 퇴출이라니요』『그동안 남편을 위해 동네 아파트를 훑고다니며 거둬다준 재산세, 전기요금만 해도 얼만데요』 지난 6월29일 5개은행이 퇴출될 당시 퇴출은행 직원과 가족들의 하소연이었다. 일선 직원들은 가족까지 동원하면서 열심히 일했는데 결과는 퇴출이라니 어처구니 없다는 얘기였다. 관료·정치인·기업인들과 유착된 은행 경영진의 잘못때문에 속절없이 직장을 잃은 은행원들은 명동성당에 모여 농성까지 했지만 이들의 하소연은 메아리없이 사그러들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이후 지금까지 금융구조조정 과정에서 직장을 잃은 은행원은 8월말 현재 1만82명이라는게 금융감독위원회의 공식 집계다. 최근 은행원들은 다시 「선진 은행」노이로제에 시달리고 있다. 금융감독위원회가 조건부승인을 받은 7개은행과 제일·서울은행에 대해 선진 은행의 1인당 영업이익(2억6,000만원)수준에 맞출 수 있도록 인력을 줄이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현재 1인당 영업이익이 1억4,000만원수준에 불과한 국내 은행들은 40%이상의 인력을 줄이라는 것이다. 당장 9개은행에서 1만3,000여명이 조만간 일자리를 잃어야 할 상황이다. 금감위가 말하는 선진 은행은 미국의 BOA(뱅크오브 아메리카), 체이스맨해튼은행, 홍콩샹하이은행이다. 금융구조조정을 위해 은행의 인력을 줄이는게 불가피 하다는 점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29일부터 총파업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한 은행 노조들도 인력감축의 당위성은 인정하고 있다. 다만 선진 은행이라는 애매한 기준으로 40%씩이나 한꺼번에 줄인다는데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일시에 40%의 인력을 줄이는게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어떤 부작용을 빚을지 얼마나 따져봤느냐는 점이다. 특히 40%의 인력을 줄여 1인당 생산성만 높아지면 선진 은행이 되는 것인지 궁금하다. 또 기업, 재경부·금감위 등 정부, 정치권 등 대한민국의 다른 부분은 선진국 수준과 거리가 먼 현실에서 유독 은행만 당장 사람을 잘라내 선진 은행수준으로 탈바꿈하라는 강요가 타당한지 모르겠다. 29일부터 총파업, 노사정위원회 탈퇴라는 한국노총과 은행 노조의 주장을 단순한 엄포로만 받아들일 상황이 아니다. 인력감축을 둘러싼 노사, 노정(勞政) 갈등이 자칫 금융구조조정을 수포로 만들 가능성도 적지않다. 이처럼 상황이 급박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근거가 모호한 금감위의 일방적 인력감축 지시때문이다. 금감위는 인력감축의 적정선을 다시 산출해야 한다. 구조조정과 실업 최소화의 접점을 찾아내야 한다. 인력을 조금 덜 줄인다고 금융구조조정이 후퇴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대한민국의 다른 부분은 그대로 둔채 은행, 그것도 조건부승인은행들만 선진 은행이 되라는 것도 우습지 않은가. <<일*간*스*포*츠 연중 무/료/시/사/회 텔콤 ☎700-9001(77번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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