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5만원권 환수율 저조 왜] "정상화 되려면 시간 필요" "지하경제로 스며든 탓" 팽팽

■ 1973년 1만원권 발행 때와 비교해보니

한은 "유통초기 환수율 저조… 13년차 80%대 상승"

전문가 "지금은 저금리시대… 현금보유 많아질 것"

통화승수도 하락… 한은, 수요 조사 연내 발표키로


고액권이 등장하자 서울 명동 사채시장이 들썩거렸다. 너도나도 고액권을 확보해 금고와 장롱 속에 차곡차곡 쌓아뒀다. 등장 첫해 한국은행으로 돌아온 고액권은 100장 중 6장 남짓. 환수율이 6.5%에 불과했다. 2년 차라고 좀 사정이 나아졌을까. 회수율은 13.2%에 그쳤다. 더구나 이는 누적 기준이다. 2년간 고액권 200장을 풀었는데 26장만 한은으로 왔다는 얘기다. 한은에는 비상이 걸렸다. 경제 규모와 달리 너무 큰 고액권을 발행해 화폐시장의 질서를 흐렸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컸다. 지하경제만 살찌운다는 폐부를 찌르는 목소리도 들렸다.

지금으로부터 41년 전인 1973년, 세종대왕이 그려진 1만원권 화폐가 등장했을 때의 풍광이다. 5만원권 등장 이후 모습 그대로다. 5만원권 역시 유통 첫해 환수율이 7.3%에 그쳤다. 2년 차에는 27.5%로 1만원권보다는 높았지만 바닥을 기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후 5만원권 유통 6년 차까지의 환수율은 1만원권과 대동소이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이를 두고 한쪽에서는 "5만원권 환수율이 낮은 것이 오직 지하경제 때문만은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1만원권처럼 5만원권의 환수율이 저조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환수율이 올라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이런 주장에 반박한다. 1만원권이 유통된 1970년대와 지금은 경제상황이 판이하게 다른 만큼 "밭에 5만원권을 묻어둘 정도로 지하경제로 돈이 흡수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19일 한은에 따르면 1만원권과 5만원권은 유통 후 몇 년간의 환수율이 판박이다. 유통 3년 차에 각각 45.8%, 40.3%의 환수율을 보였고 4년 차에 58.7%, 46.5%로 격차가 벌어졌지만 5년 차, 6년 차 때는 큰 차이가 없다.


한은 고위관계자는 "최고액권이 나온 후 시중에 화폐가 정상적으로 흡수되고 환수율이 안정적 수준인 80~90%대로 올라가기까지는 일정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라며 "현재는 5만원권의 수요, 공급이 불안정해서 환수율도 변동이 심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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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원권은 유통 13년 차인 1985년 환수율이 처음으로 80%대로 올라선 후 현재까지 80~90%대의 환수율 추이를 보이고 있다. 이를 현재에 대입해보면 5만원권 환수율은 오는 2016년에 50%대로 상승한 뒤 2021년부터 80~90%대의 안정적인 환수율을 기록할 것으로 한은은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의 의견은 다르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1970년대는 은행 이자가 두자릿수에 달하는 고금리 시대였다. 현금을 장롱에 놓고 있는 게 손해였다"며 "하지만 지금은 저금리·저성장으로 고금리 투자처를 찾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세무당국의 조사도 깐깐해져 현금보유 성향이 더 강하다"고 밝혔다. 사람들이 앞으로도 5만원권을 금고에 쌓아둘 확률이 높고 이에 따라 환수율이 1만원권처럼 상승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더욱이 7~9월 발행된 5만원권은 4조9,410억원에 달했지만 환수된 5만원권은 9,820억원으로 환수율이 19.9%에 그쳤다. 누적 환수율이 아닌 특정 시점에 새로 발행되는 화폐량과 회수량을 비교하면 10%대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은 관계자는 "올 3·4분기에는 추석을 앞두고 5만원권 공급물량을 늘린 요인도 있다"고 설명했지만 5만원권의 환수율 하락이 지하경제와 관련성이 있을 것이라는 의견은 식지 않고 있다. 박덕흠 새누리당 의원은 "개인이나 회사가 현금 형태로 재산을 보유하거나 세금을 피하기 위한 현금거래를 늘리는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은은 논란이 거세자 올해 처음으로 일반인과 기업을 상대로 화폐 수요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여 연내 공표할 방침이다. 김준태 한은 발권정책팀장은 "5만원권 등 화폐의 거래 및 보유목적을 조사해 12월께 첫 서베이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5만원권 환수율이 떨어지면서 통화지표에도 혼선을 주고 있다. 5만원권이 유통된 후 시중에서 돈이 도는 정도를 보여주는 통화승수는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다. 통화승수는 2000년 1월 26.1배에서 2009년 6월 25.5배를 보였으나 그 뒤 꾸준히 하락해 올 8월 현재 18.7배로 비교 가능한 2001년 12월 이후 최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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