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저출산·고령화 문제는 자산시장에도 직격탄을 날린다. 고령화가 심화할수록 자산을 처분해 소비하려는 노인들은 증가하는 반면 인구감소에 따라 이를 받아낼 청장년층은 쪼그라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른바 부동산 불패신화의 몰락이다. 금융시장에서도 저축보다는 연금에 대한 선호 현상이 뚜렷해진다.
이미 700만 베이비붐 세대의 '부동산 탈출 러시'는 시작됐다. 현재 은퇴시기를 맞고 있는 베이비붐 세대들의 부동산 자산과 금융 자산의 비중은 7대3. 미국과 일본의 금융자산 비중이 각각 70%와 60%에 달하는 것과는 반대다. 미국의 경우 1970~1980년대 베이비붐 세대의 신규주택 수요가 늘면서 집값이 상승했다가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며 급락했다. 우리나라도 베이비붐 세대가 30대에 접어든 1980년대 중반 부동산 값이 급등했으나 이들의 퇴직이 시작된 2010년대부터 부동산 경기가 확연히 꺾였다.
공성율 국민은행 목동PB센터 팀장은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면서 경제·사회적으로 국가 자체가 바뀌는 아주 중요한 시점"이라며 "일본이 1990년대, 미국이 2000년대 경험했던 것처럼 노령층 세대가 현금마련을 위해 부동산을 팔면서 부동산 가격이 크게 하락하고 주식시장이 장기침체를 겪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그나마 부동산 가운데 임대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오피스텔 등 수익형 부동산이 명맥을 유지하는 모습이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 전문위원은 "오피스텔은 노후불안의 상징"이라며 "오피스텔이나 상가, 다세대·다가구, 소형 아파트를 통해 자산을 현금화하려는 베이비부머가 많다"고 말했다. 반대로 대형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주거형 부동산은 처분하지 못해서 안달이다.
아예 부동산을 처분하고 금융으로 옮겨가는 자산가들도 크게 늘었다. 송민우 신한은행 PWM프리빌리지서울센터 팀장은 "핵심 부동산 시장은 영향이 없겠지만 전반적인 부동산에 대한 시각은 긍정 이하"라며 "3년 전만 해도 부동산 비중이 7대3이었는데 요즘은 5대5로 바뀌는 느낌"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금융자산 중에서도 특히 주목 받는 것은 연금이다. 김홍달 우리금융경영연구소장은 "금융 쪽으로 옮겨가는 추세가 당연히 높아질 수밖에 없는데 금리가 낮다 보니 포트폴리오 짜기가 쉽지 않다"며 "이런 이유에서 연금저축·연금보험 등 면세 혹은 저세율 금융자산 쪽으로 자원이 쏠린다"고 설명했다.
미래에셋은퇴연구소에 따르면 개인연금 적립금 규모는 지난 2008년 100조5,000억원에서 2012년 216조원으로 4년 새 2배 이상 커졌다. 손성동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연금연구실장은 "현재 30~40대가 노후준비를 소홀히 한 은퇴 선배들의 삶이 위기에 봉착한 실태를 목도할 경우 개인연금이 더 각광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문제는 개인연금 수익률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점이다. 류건식 보험연구원 고령화실장은 "수익률이 거의 1%대라 노후준비가 안 된다는 인식이 팽배해지면 오히려 가입이 둔화될 수 있다"며 "제도적 규제완화를 통한 유인책도 필요하지만 금융기관의 관리능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