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창업의 신'이 요즘 꽂힌 대박사업은… <br>[CEO&Story] 김병태 CWT코리아 회장

귀신같은 창업 본능… 사업 본궤도 오르면 바로 다른 일 찾죠<br>85년 국내 첫 지도책 출간 88올림픽때 날개돋친 듯 팔려… 경쟁 조짐 보이자 판권 넘겨<br>BT&I 여행사·풍월당… 손대는 것마다 흑자전환… 이젠 축제·공연 도전하고파





한국에서는 기업과 이를 키운 기업가를 동일시하는 문화가 있다. 망할 지경에 몰리지 않고서는 여간해서 기업가가 그 회사를 떠나는 법도 없다. 이런 풍토에서 김병태(54ㆍ사진) 칼슨와곤릿트래블(CWT)코리아 회장은 보기 드문 기업가다.

그는 늘 남들이 생각하지 않은 사업에 도전하고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면 회사를 박차고 나선다. 한 우물만 진득하게 파지도 않는다. 지금 가지고 있는 직함만도 글로벌 기업출장 매니지먼트사 CWT코리아의 회장, 중저가 비즈니스호텔 체인 애플트리호텔의 이사회 의장, 바이오벤처기업 바이오리더스의 특별고문 등 다양하다. 이쯤 되면 경영자라기보다는 창업전문가 쪽에 가깝다.


그가 처음으로 창업을 꿈꾼 건 지난 1982년. 지금이야 내비게이션으로 실시간 교통정보까지 확인하는 시대지만 당시만 해도 국내에는 변변한 지도책이 없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당연히 필요한 제품이지만 선뜻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려는 사람이 없었던 것. 김 회장은 "올림픽을 하면 외국 사람이 올 것이고 당연히 지도를 찾을 거라고 생각했다"며 "망해도 의미 있는 것을 하고 싶다는 명분과 성공하고 싶다는 욕심이 겹쳐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3년간의 준비를 거쳐 1984년 대학 동기들과 서부출판사를 세우고 이듬해 국내 최초의 지도책을 출간한다. 지도를 책으로 만든 사람이 없어 페이지마다 따로 감수를 받아야 해 인지대만 100만원에 이를 정도였다.

예상대로 지도책은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올림픽 특수'를 톡톡히 누렸다. 당시 시세로 강남 아파트 한 채의 절반에 해당하는 7,000만원에 이르는 빚을 다 갚고는 아파트를 한 채 구입할 정도로 짭짤했다.

그에게 첫 성공을 안겨준 지도책은 아직 그의 집무실 책장에 고이 꽂혀 있다. "지금 봐도 하나도 촌스럽지 않다"며 자랑스럽게 지도책을 꺼내드는 모습에서 첫 사업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느껴졌다.

김 회장은 그러나 머지않아 이처럼 애지중지하던 지도책의 판권을 과감히 다른 출판사에 넘겨버린다. 그리고 이를 "지금까지 가장 잘한 선택"이라고 선뜻 말한다. 그는 "그 당시에도 지도책을 만들 역량이 있는 회사가 많았지만 안 만들었던 것"이라며 "이런 시장이 있는지 몰랐던 사람들이 막 지도책을 내기 시작했는데 계속 버티고 있었으면 틀림없이 망했을 것"이라고 사업을 정리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후 그는 새 사업을 시작하고 떠나기를 반복한다. 서부출판사를 떠난 그는 비티앤아이(BT&I) 여행사로 자리를 옮긴다. 1980년대만 해도 여행업은 산업의 한 분야로 인정받지 못할 만큼 열악한 업종이었다. 해외여행 자유화가 안 됐던 시점이라 돈이 있어도 여행을 갈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던 탓이 컸다.

하지만 그는 여행업을 하나의 산업으로 키우며 비즈니스 전문여행사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정립해냈다. 입사 7년 만에 대표이사의 자리에도 올랐다. 온라인 여행사인 투어익스프레스를 합병하고 코스닥 상장을 시킨 것도 그의 작품이다.

김 회장은 "하나투어가 상장할 때 상장 못하는 회사는 도태되리라고 생각했다"며 "결국 BT&I를 상장시킬 수 있었고 여행업이 하나의 산업군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2009년 BT&I의 최대주주였던 그는 지분을 깨끗이 정리하고 다음 사업에 도전한다. 바로 클래식 아카데미인 풍월당이다. 정신과 의사인 박종호 풍월당 대표와는 스승과 학생으로 처음 만났다. 그는 적자를 내고 있던 사업이 안타까워 박 대표에게 동업을 제안했고 풍월당의 공동대표직을 맡았다.

최고경영자(CEO)를 위한 오페라아카데미,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투어 등 그가 기획한 상품들은 연이어 성공을 거뒀다. 술ㆍ골프 등 한정된 놀이문화에서 벗어나 한국 남성 CEO들에게 예술적 감성을 불어넣겠다는 그의 생각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그는 "클래식이 주는 위안이 있다"며 "한국의 남성 CEO들에게 문화에 가깝게 갈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며 풍월당에 뛰어든 배경을 밝혔다.

이내 풍월당은 흑자로 돌아섰다. 그러자 그의 창업가 본능은 또다시 발동했다. 지난해 CWT의 한국 단독 파트너로 선정된 김정현 대표의 동업제안을 받아들여 CWT코리아 회장으로 자리를 옮긴 것. 국내 비즈니스 여행사들의 영업방식이 단순한 해외출장 지원에 그치고 있지만 이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 전반적인 출장 경로를 컨설팅하고 경비를 줄여주는 수준까지 발전시키겠다는 구상을 실현하고 싶어서다.

그는 "글로벌 업체로 성장한 회사는 수시로 출장을 다녀야 하고 출장경비만 해도 수백억원대에 이른다"며 "(이를 컨설팅해준다는 것은) 일반 여행사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영업이며 2~3년 내로 큰 시장변화가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김 회장이 가장 큰 관심을 쏟고 있는 사업은 저가 비즈니스 호텔 체인. 2010년 말부터 매형, 오페라 동호회에서 만난 친구들과 함께 '애플트리호텔'을 만들고 본격적인 호텔 체인 사업을 시작했다. 애플트리호텔은 현재 기업 밀집지역인 포항ㆍ군산에 1ㆍ2호점을 열었으며 서울 녹번동에 3호점 개점을 준비 중이다.

이번 사업에서 그는 어떤 의미를 찾는 걸까. 기자가 이렇게 묻자 그는 "로열티를 주지 않는 자국 비즈니스 호텔 체인이 없는 나라가 한국 말고 또 어디 있느냐"라고 되물었다. 물론 국내에도 신라호텔처럼 최고급 자국 호텔 브랜드를 가지고는 있지만 10만원 이하 숙박비로 안심하고 묵을 수 있는 비즈니스 호텔은 아직 자리를 잡고 있지 못하다는 진단이다. 실제로 국내의 많은 숙박업 업주들은 같은 공간이라면 객실회전율이 높은 러브호텔ㆍ모텔 사업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빈틈을 노리고 도요코인 등 일본업체들이 국내 시장에 활발히 진입하는 상황도 그에게 자극제가 됐다. 그는 "땅을 가지고 있거나 모텔사업을 하지만 입지가 비즈니스 호텔에 맞는 사람을 모아서 체인을 만들겠다"며 "애플트리호텔만 보면 싸고 가족들과 같이 들어가도 괜찮고 위생적이라는 것을 한국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알게 하고 싶다"고 강한 의지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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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책, 비즈니스 전문여행사, 클래식 아카데미, 기업출장 매니지먼트, 저가 호텔 체인 등 끊임없이 의미 있는 사업을 찾아온 김 회장. 마지막으로 다음 도전 분야는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축제ㆍ공연 쪽을 하고 싶다"고 답했다. K팝ㆍK드라마 등 좋은 콘텐츠를 가지고 있지만 이를 살린 축제는 제대로 못 만들어내고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는 한국 부자들에 대해 "사회 덕분에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이 돈을 더 벌 궁리만 계속하지 명분 있는 사업을 시작하려는 노력은 부족하다"며 일침을 가했다. 500억원대 자산가가 100억원을 날려도 사는 데는 지장 없을 뿐더러 가치 있는 사업을 하다 실패했다면 그 자체로 명분이 서는 일 아니냐는 경영철학이다. 사회에 기여하는 사업이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남다른 기업관의 김 회장. 그의 다음 도전이 기대된다.




● 김병태 회장은


▦1958년 경남 창원 ▦1980년 성균관대 식품생명공학과(옛 낙농학과) 졸업 ▦1985년 성균관대 식품생명공학과 석사 ▦1984년 서부출판사 대표 ▦1995년 BT&I여행사 대표 ▦1998년 코스자산유동화 대표 ▦2009년 풍월당 대표 ▦2010년~ 애플트리호텔 대표 ▦2011년~ CWT코리아 회장





자기 부족한 점 채워줄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일하라


● 김병태 회장의 동업 예찬론

'형제끼리도 동업은 하지 마라' '친구와 멀어지고 싶으면 동업을 하라'는 말처럼 일반적으로 동업은 창업가에게 금기사항. 하지만 그는 "제일 바보 같은 사람이 자기가 가진 역량만 가지고 사업하는 사람"이라며 "자기가 가지지 못한 점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랑 무조건 동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비티앤아이(BT&I)에서 같이 일했던 송경애 사장은 오랜 해외생활로 비즈니스 전문 여행사를 운영하기 위한 안목이 있었다. 풍월당의 박종호 사장은 높은 인지도와 클래식에 대한 이해를 갖췄다. 김 회장의 넓은 네트워크와 국내 사업환경에 대한 이해도는 파트너의 이 같은 자질에 날개를 달아줬다. 하지만 결코 따로 떨어져서는 성공하기 어려웠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동업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조언도 덧붙였다. 대개 5대5의 비율로 똑같이 일하기로 하고 동업을 시작하지만 내가 조금이라도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면 불만이 쌓이고 동업이 깨지기 마련. 이에 대해 김 회장은 "처음부터 7대3으로 나누고 내가 3을 받는다고 생각했다"며 "처음에는 손해를 보는 것 같아도 세월이 지나면 (나만 더 일한 것 같다는) 오해가 풀린다"라고 역설했다.

잘됐을 때도 '회사가 내 것'이라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실제 그는 BT&I의 최대주주였던 지난 2009년 지분을 모두 털고 나왔다. 역할이 끝났다면 과감히 떠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

풍월당 역시 적자였던 회사가 흑자로 전환하고 자리를 잡자 지난해 과감히 대표이사직을 사임했다. 이 모습을 가까이서 봤던 후배인 김정현 CWT코리아 사장이 동업을 제안하고 그를 회장으로 영입한 것처럼 그의 동업관은 항상 또 다른 기회를 불러 들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김 회장은 "젊은이들을 위한 멘토가 되고 싶다"며 그가 가진 사업경험을 나눠주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최근 '세상의 모든 것과 동업하라'는 책을 내놓은 것도 젊은이들이 시행착오를 줄이도록 돕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책 서문에 '88만원 세대에게 고함'이라는 제목으로 젊은이들을 위한 조언을 덧붙였을 정도다. 그래서 그는 책을 본 젊은 예비창업가들이 사업계획서를 보내오면 사소한 것이라도 지나치지 않고 피드백을 해준다.

그는 "대학 동기, 매형, 스승, 직장 후배에 이어 이제 독자와 동업을 하고 싶다"며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언제든 e메일(btkim@carlsonwagonlit.kr 또는 btkim@atholets.com)로 사업계획서를 보내달라"고 말했다.


연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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