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史馬遷)의 사기(史記)를 보면 혹리열전(酷吏列傳)이 나온다. 혹리란 중국 한무제(漢武帝)때 활약했던 검찰관리들을 일컫는다.한무제는 국가 기강이 무너지고 관료들의 부패가 심해지자 검찰권을 동원, 가차 없는 사정 활동을 벌인다. 이때 유능한 혹리들이 많이 나타나 황제의 뜻에 부응한다.
이들은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로 문무관료들을 겁주고 단속하는데 그러다가도 한번 삐끗하면 자신들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다.
혹리들은 당(唐)나라 때 또 한번 화려한 등장을 한다. 측천무후(則天武后)가 기득권 세력과 치열한 권력투쟁을 벌일 때 혹리들을 동원한 것이다.
측천무후가 황후의 신분으로 실권을 장악하고 스스로 황제가 되기까지 혹리들의 공헌이 아주 컸다. 칼자루를 쥐어주고 여러 가지로 후대하니 물불을 안 가리고 황제의 뜻을 받든 것이다.
혹리가 너무 설치면 원성이 나오는 법. 탁월한 정치감각을 지닌 측천무후는 세상 민심을 봐가며 적당히 혹리들을 솎아낸다. 세상의 원망을 많이 받아 용도폐기가 된 고참은 그 아래 혹리로 하여금 처리케 한다.
한번은 우두머리를 제거하라는 밀명을 그 밑의 혹리에게 내린다. 그 혹리는 우두머리를 집으로 초대한다. 시침을 떼고는「죄인이 정 자백을 하지 않을 땐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하고 묻는다. 우두머리는「그땐 펄펄 끓는 물과 불에 지진 인두를 준비해 놓고 어느쪽을 택하겠느냐고 물으면 높은 사람들은 대개 겁이 많아 그 자리에서 항복하고 만다네」하고 훈수를 했다.
그러자 그 혹리는 우두머리에게「정원에 준비해놓은 것이 있어 거기로 모시겠습니다」하곤 앞장서 인도한다. 가보니 펄펄 끓는 물과 불에 달군 인두가 준비돼 있었다 한다.
요즘 한국 검찰에서도 보기 거북한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 전직 총수가 재직 당시의 일로 문초를 받아 갇혀 있고 집안 식구들도 줄줄이 조사를 받고 있다. 그래서 천년도 더 지난 혹리열전이 생각났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