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한국 옷 어디서 샀냐" 외국서도 난리
[이젠 패션코리아 시대] 세계로 뻗어나가는 K패션패션 본고장 뉴욕·파리서도 손짓… 지구촌 한류 수놓는다
심희정기자 yvette@sed.co.kr
제일모직 '구호' 뉴욕 진출… 남성복 '준지'도 파리서 호평코오롱 '시리즈' 피렌체 전시… 구찌·프라다와 어깨 나란히SK네트웍스 '오즈세컨'은 미국 이어 유럽·아시아 확대
세계적으로 가장 핫한 편집숍 '오프닝세리머니'의 일본 시부야점에서는 최근 이태원ㆍ가로수길 등에서 활동하는 8명의 한국 신진 디자이너 특별전을 열었다. 성장 가능성이 높은 브랜드만 선별해 발굴하는 신인 디자이너의 등용문으로 이름 난 이곳에서 한국 루키 디자이너들만의 특별전시회를 했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 패션이 세계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는 증거다.
오수민 삼성패션연구소 연구원은 "꽃봉우리가 맺히기 시작한 K패션이 이제 만개를 기다리고 있다"며 "디자이너들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한 대기업들의 지속적인 투자와 해외진출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준비된 K패션, 세상 밖으로 나왔다=토종 브랜드들의 무대가 세계로 옮겨가고 있다. 매년 패션 거장들의 놀이터인 해외 패션쇼와 새로운 디자인에 목말라하는 해외 바이어들이 집결하는 글로벌페어에 참가하고 있다.
제일모직은 국내 패션업체로는 처음으로 지난 2010년 2월 세계 패션의 중심인 미국 뉴욕 컬렉션에 여성복 브랜드 구호를 선보인 데 이어 2012년에는 남성복 브랜드 준지와 구호를 함께 파리 컬렉션에 내놓았다. 글로벌시장 공략을 위한 포문을 열어젖힌 것이다.
올해 국내 매출 1,000억원 돌파를 앞둔 구호는 지난해 진출한 파리 컬렉션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편집매장인 IF뉴욕ㆍ오프닝세리모니(이상 뉴욕), 10꼬르소꼬모ㆍ단토네(이상 밀라노), 조이스(홍콩) 등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정구호 제일모직 전무는 "세계적인 컬렉션에 참여하는 것은 한국인의 창의성과 장인정신을 세계무대에 선보인다는 점에서 중요하다"며 "앞으로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시장과 중국ㆍ일본 등 아시아 지역까지 사업영역을 확장할 것"이라고 전했다.
2011년 제일모직에 합류한 정욱준 디자이너의 '준지'도 18일 파리 컬렉션에서 호평을 받아 유럽 진출 가능성을 더욱 높였다. 특히 이번 컬렉션은 꼼데가르송ㆍ앤드뮐미스터ㆍ지방시ㆍ존갈리아노 등 세계적인 유명 브랜드와 함께 황금시간대에 펼쳐져 더욱 주목을 받았다.
코오롱FnC는 패션의 본고장인 유럽 및 미국시장 진출의 교두보인 '해외 페어' 참가를 통해 글로벌 패션으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이 한창이다. 남성 캐주얼 '시리즈'는 8일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린 남성 어패럴 최대 국제전시회인 '피티'에 2년 연속 초대받아 구찌ㆍ프라다ㆍ펜디ㆍ마크제이콥스 등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 전시회는 유럽은 물론 세계 유수의 브랜드 및 패션 기업과 현장에서 직접 수주상담이 이뤄지는 만큼 글로벌시장 진출의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캐주얼재킷, 솔리드셔츠, 재킷형 스웨터 등이 영국ㆍ프랑스ㆍ이탈리아 등 서유럽 편집 바이어숍들의 관심을 끌었고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 브랜드에 대한 관심과 호감도가 급상승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는 전언이다. 한경애 코오롱FnC 상무는 "글로벌페어에 참가해 패션의 본고장인 유럽시장 진출 가능성을 높이고 디자인 및 제품 경쟁력에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패션 본고장을 넘어섰다=SK네트웍스가 2008년 인수한 디자이너 브랜드 오즈세컨은 브랜드 감성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대기업의 마케팅과 영업력이 더해져 해외 진출에 성공한 유일한 사례다. 오즈세컨은 1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2011년 10월 뉴욕 패션의 중심 '바니스뉴욕'의 매디슨스토어 입점을 시작으로 20곳의 편집숍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다. SK네트웍스 관계자는 "오즈세컨의 브랜드 정체성에 글로벌 트렌드를 접목시킨 상품기획, 끊임없는 샘플링 작업 등 전폭적인 투자와 지원을 통해 미국 바니스 뉴욕에 입점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올 들어서는 고급 백화점인 '삭스피프스애비뉴' '니먼마커스' '노드스톰'과 입점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 밖에 영국ㆍ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시장을 공략하고 일본ㆍ홍콩 등 아시아시장과 중동ㆍ러시아ㆍ호주 지역 등 글로벌패션시장 전체를 대상으로 사업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SK네트웍스는 ▦해외 브랜드 인수합병(M&A) ▦자체 브랜드 디자인 역량 및 해외진출 강화 ▦신규 사업을 통한 포트폴리오 강화 등의 전략을 구사해 오는 2015년까지 패션사업 매출을 1조5,000억원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중국은 제2의 내수시장=LG패션은 중국시장이 커지면서 2004년 설립한 상하이지사를 2009년 중국법인으로 승격시켰다. 아울러 헤지스에 이어 라푸마ㆍTNGTKㆍ모그 등이 중국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헤지스는 2012년 매출 500억원과 100여개 유통망을 확보하며 중국에서 프리미엄 트래디셔널 캐주얼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중국 주요 매장에서는 현지에서 유독 인기 높은 타미힐피거를 누르고 매출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올해에는 상하이ㆍ베이징 등 중국 주요도시 내 대형매장 위주로 유통망을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헤지스는 또 지난해 12월 대만 최대 패션기업인 '먼신가먼트'그룹과 독점 수출계약을 체결하며 국내 패션브랜드 최초로 대만시장에 진출했다. 현재 5개 매장을 2015년까지 15개로 늘려 동남아시장 진출을 확대한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다.
[패션코리아 시대 열린다] 글로벌 패션 집결지 가로수길
지난주 말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패션거리.
총 길이 600m에 불과한 가로수길은 만만찮은 추위에도 불구하고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다니는 쇼핑객들로 붐비면서 여느 해보다 춥지 않은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명동에 이어 한국의 패션 메카로 떠오른 가로수길은 글로벌과 토종 브랜드가 격돌하고 있다. 대규모 자본을 앞세운 브랜드 중심으로 패션 상권이 형성된 명동이나 강남역과 달리 개인 디자이너숍, 플래그십 스토어, SPA(제조ㆍ유통 일괄화 의류) 브랜드, 편집숍 등이 혼재하는 이곳은 '글로벌 패션 전장의 축소판'이나 마찬가지다.
이곳 총성 없는 전쟁터에서는 K팝ㆍK뷰티에 이어 또 다른 한류의 축을 이어갈 K패션의 심장박동이 거세다. 글로벌 SPA 브랜드의 대항마로 지난해 제일모직이 론칭한 토종 SPA 브랜드 에잇세컨즈 가로수길점은 하루 매장 방문객 수 2,000~3,000명 가운데 해외 고객 비중이 최대 50%에 달한다. 겨울 시즌이 되면서 외국인 고객들의 1인당 구매액이 국내 고객보다 2배가량 높은 6만원선까지 치솟고 있다. 앞으로 중국 등 아시아권 진출을 노리는 에잇세컨즈로서는 이미 중국과 일본 관광객들을 상대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있는 셈이다. 이 매장에서 만난 한 대만 여성(27)은 서툰 한국말로 "예전에는 독특한 아이템이 많은 일본으로 쇼핑 관광을 갔지만 요즘은 디자인ㆍ품질ㆍ가격경쟁력이 높은 한국을 최고의 쇼핑 관광지로 꼽는다"고 말했다. 그는 "드라마에서 봤던 한류 스타들의 옷과 비슷한 옷을 찾다가 한국 패션을 접하게 됐다"며 "대만 여성들이 한류 스타들의 옷에 열광한다"고 덧붙였다.
글로벌ㆍ토종 대기업 등이 너나없이 가로수길에 몰려드는 이유는 뭘까. 트렌드 컨설팅 회사인 인터패션플래닝은 "트렌드에 민감한 한국 시장 가운데서도 유행을 선도하는 가로수길이 패션업체들 사이에 가장 날카로운 테스트베드로 인식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가로수길에서 성공하면 한국 시장 공략에 유리하다는 공감대가 확산된데다 최근에는 한국의 대표 관광 거리로 인기를 끌면서 내국인뿐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까지 동시에 잡을 수 있는 매력적인 상권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3년여 전부터 지난해까지 띠어리, 디젤, 라코스테(이상 수입 브랜드), 자라, 포에버21, 마시모두띠(이상 글로벌 SPA)에 이어 토종 SPA 브랜드와 토종 편집숍으로 대표되는 스파이시칼라, 에잇세컨즈, TNGT, KM PLAY, 어라운드 더 코너 등이 하나 둘씩 가로수길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올해에도 글로벌 SPA인 홀리스터가 오는 2월 가두점으로는 처음으로 가로수길 에잇세컨즈 옆에 나란히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고 스웨덴 SPA 브랜드 H&M이 올 상반기 오픈이 예정돼 있는 등 올해 3조원으로 추정되는 국내 SPA 시장을 놓고 한층 치열한 전쟁이 예고되고 있다.
글로벌 SPA 브랜드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생겨난 국내 편집숍이나 최근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인기가 부쩍 높아진 개인 디자이너숍도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대부분 동대문 시장에서 자생해온 일명 '보세 양품점'인 개인 디자이너숍은 한국 패션산업의 선진화에 따라 품질이 어디 내놓아도 손색 없는 수준에 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백화점이나 SPA 브랜드와 달리 가짓수를 늘리는 대신 소량 생산으로 디자인의 희소가치가 돋보이다 보니 특히 외국인 관광객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보세 옷가게에서 지출하는 평균 구매액은 내국인(20만원)의 5배인 100만원선. 동대문 도매시장에서 옷을 사다 판다는 한 숍의 점원은 "1~2년 사이 중국ㆍ일본인은 물론이고 한류 열풍으로 한국을 찾은 유럽ㆍ몽골ㆍ동남아 관광객들이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인지부터 우선 문의한다"며 "해외에서 편집숍을 운영하는 바이어들도 방문해 유니크한 디자인의 국산 제품을 싹쓸이해 가고는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신진 디자이너들이 모여드는 최첨단 상권이다 보니 가로수길은 쇼핑 공간으로서만이 아니라 디자인 전진기지 역할까지 톡톡히 해내고 있다.
국내 편집숍 KM PLAY의 한 관계자는 "유럽ㆍ홍콩 출신 바이어들이 독특한 한국산 제품을 구입하러 이곳을 찾는다"며 "의류뿐 아니라 최근에는 독특한 디자인의 가방ㆍ액세서리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한 개인 디자이너숍에서 만난 덴마크 직장 여성 파티마 발스(27)씨는 3개월 전 사업차 한국을 방문했다가 이번 겨울 휴가를 맞아 쇼핑 목적으로 다시 방한해 가로수길을 찾았다. 그는 "한국 디자이너가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한 옷을 즐겨 찾는다"면서 "디자인이 심플하면서도 디테일이 강한 옷들이 많아 덴마크 친구들로부터 어디서 샀냐는 문의를 많이 받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