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조선시대 正祖를 벤치마킹하라

황원갑 <소설가ㆍ한국풍류사연구회장>

[시론] 조선시대 正祖를 벤치마킹하라 황원갑 황원갑 지금 우리나라 경제는 성장이니 분배니 하는 차원이 아니라 빈사상태의 위기에 빠져들고 있어 매우 걱정스럽다. 국가경제도 위기지만 피폐해진 민생경제가 더욱 문제다. 더 늦기 전에 원인을 찾아야 한다. 난치를 지나 불치의 나락으로 굴러떨어지기 전에 비상한 처방을 내놓아야 한다. 어지러운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 이런 현상을 언제까지나 정권을 지지하지 않는 국민의 탓, 비판언론의 탓, 야당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이 모두 김대중 정권 때부터 불거진 위정자의 독선과 아집을 바탕으로 한 그릇된 정치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또다시 역사의 교훈을 강조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무슨 교훈을 찾을 것인가.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을 되새겨야 한다. 누구에게 배우는 것이 좋을까. 조선왕조의 문예 부흥기를 이끈 중흥조 정조(正祖, 1752~1800)를 벤치마킹하라. 정조는 조선 후기 전환기에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면서 급변하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과감한 개혁정책을 펼쳤다. 그렇다고 해서 정조가 개혁을 빌미로 온갖 여론을 무시한 채 터무니없이 제 고집만 옳다고 밀어붙인 것은 아니었다. 훌륭한 군주의 자질을 갖춘 데다 당대의 어떤 학자에 비해도 손색없는 학문적 소양을 지닌 정조는 기존의 정부조직 외에 별도로 규장각(奎章閣)이라는 새 기구를 설치하고 새로운 학문사상으로 부각된 북학(北學)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그것이 바로 실사구시 정신이었다. 실사구시란 당시 청나라 고증학자들이 내세운 학문방식으로 사실에 입각해 진리를 탐구하려는 과학적 학문태도였다. 청나라 초기의 고증학자들이 공리공론을 일삼던 송ㆍ명의 주관적 학풍을 배격해 객관적이며 귀납법적 과학정신을 내세운 것이었다. 이처럼 관념론적 성리학을 극복하고 미래지향적인 실용주의 실학으로 사상적 재무장을 한 것이었다. 그 결과 이익(李瀷)ㆍ이가환(李家煥)ㆍ이중환(李重煥)ㆍ안정복(安鼎福)ㆍ정약용(丁若鏞) 같은 경세치용학파, 홍대용(洪大容)ㆍ박지원(朴趾源)ㆍ박제가(朴齊家)ㆍ이덕무(李德懋)ㆍ김정희(金正喜)ㆍ박규수(朴珪壽) 같은 이용후생학파의 출중한 실학자들이 나타나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실사구시 이론을 만개할 수 있었다. 정조는 무슨 일이든 말부터 앞세우지 않고 세밀히 분석 검토한 뒤 계획을 세워 실천에 옮겼다. 뒷감당도 제대로 못하면서 매사에 큰소리를 내는 법이 없었고 반드시 학문적 뒷받침을 구해 일의 앞뒤를 미리 살폈으며 그렇게 결정된 정책은 꾸준히 추진했다. 그런 정치 스타일이 가장 잘 반영된 것이 규장각이었다. 규장각은 역대 왕의 어제ㆍ어필을 봉안하고 수만 권의 서적을 수집ㆍ편찬해 표면은 왕실도서관이나 실상은 학술과 문화의 중심이었고, 인재 양성의 요람이었다. 규장각은 관료의 기강쇄신, 인재의 배양, 통치 보좌의 기능과 역할을 맡아 세종(世宗) 때의 집현전, 성종(成宗) 때의 홍문관 이상 가는 개혁의 산실 노릇을 했다. 정조는 모든 정파를 망라한 인재를 규장각 각신(閣臣)으로 선발했으며 당하관 중 37세 이하의 우수인재를 초계문신(抄啓文臣)으로 발탁해 국가의 동량으로 양성했으니 전ㆍ현 정권의 명분 없는 자기사람심기나 신세갚기식 인사와는 천지차이가 있었다. 그는 또 외척을 제거하고 규장각을 중심으로 한 학문정치를 펼친 데 이어 노론ㆍ소론ㆍ남인ㆍ북인을 차별하지 않고 탁월한 인재를 골고루 등용하는 탕평책을 씀으로써 보수ㆍ중도ㆍ개혁의 대연합을 이끌어냈다. 여기에는 그 어떤 권모술수도 없었다. 이어서 정조는 신분제도 개혁을 단행해 서얼을 등용하고 노비추쇄법을 폐지하는 등 사회적 변화를 수용함으로써 사회적 통합을 시도했다. 또한 공직사회의 중단 없는 기강쇄신을 위해 재위 24년간 역대 어느 왕보다도 많은 기록인 60회에 걸친 암행어사를 파견하기도 했다. 정조시대의 실학은 이런 정치ㆍ경제ㆍ제도적 개혁과 안정의 바탕 위에서 화려하게 피어날 수 있었으며 그렇게 해 세종의 치세 이후 조선왕조 최고의 화려한 문예 부흥기를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개혁다운 개혁을 하려면 군주다운 군주 정조에게 배울 것을 권한다. 입력시간 : 2004-11-26 15:43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