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노사정 3자 합의로 13년을 미뤄왔던 복수노조 및 노조전임자 문제에 대한 돌파구가 마련됐다. 극적으로 타협을 이끌어 내긴 했지만 노사문화 선진화의 문턱을 넘어서는 대타협이었다고 하기엔 뭔가 부족하다. 합의를 주도했던 한국노총과 경총은 자기 이해관계를 뛰어넘는 결단보다 각자의 이해타산을 절충하느라 협상에 참여하지 못한 일반 근로자들이나 민주노총, 야당 등의 입장을 감안할 겨를이 없었다. 심지어 최대ㆍ최강의 조직사업장인 현대ㆍ기아자동차 조차 경총 탈퇴를 선언했을 정도다.
정부 신뢰성 떨어뜨려
전체적인 손익계산을 해보면 재계는 조금 남는 편이고, 노동계는 최악을 피해 선방했으며, 제일 남는 장사를 한 건 한나라당이다. 이번 합의 골격을 노사와 한나라당이 만들었고 노동부는 막판에서야 이 타협에 발을 담갔기 때문이다.
사실 한나라당과 한국노총은 복수노조ㆍ전임자 문제에 관해 한 편이나 다름이 없었다. 지난 대선 때의 정책연대도 그렇고 그동안 이명박(MB) 정부가 어려울 때마다 한국노총이 정부 편에 서주었던 이유는 이 문제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서였다.
따라서 이 문제의 해법은 이들이 주장하는 현실론과 정부의 개혁 원칙을 절충하는 데 있었다. 더 단순화시켜 얘기하면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의 리더십을 보존하면서 노사개혁의 원칙을 살리는 절충점을 찾는 문제였다. 11월 말까지 계속되던 팽팽한 대치에서 협상의 물꼬를 튼 사람은 장 위원장이었다. 한국노총이 전임자제도 개혁 원칙을 수용하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 복수노조에 반대한다며 재계와 한 편이 됐던 것이다. 이후 협상은 식은 죽 먹기였을 것이다.
이번 합의의 최대 피해자는 누구일까? 안타깝게도 정부 말을 믿고 준비해 왔던 기업이나 노동조합일 것이다. 정부는 당초 이 문제의 원칙적 해결을 통해 노사관계의 대전환을 이루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해 왔다. 그러나 정부의 갑작스런 태도 변화로 개혁정책을 지지했던 전문가들이나 개혁 이후를 대비해 왔던 노사만 바보가 됐다. 룰을 정직하게 따르려고 하는 사람이 손해를 보고 어떻게든 룰을 자기에 맞게 바꿔보려고 하는 사람이 득을 보게 된 셈이다. 정부 스스로 정책에 대한 신뢰성을 떨어뜨린 결과다.
앞으로 정부가 어떤 정책을 "꼭 시행하겠다"고 약속하더라도 '그 때 가봐야 안다'는 냉소가 퍼질 것이다. 당장 이번 합의를 두고도 '정말 그대로 실현될까?' 하고 의문을 갖는 사람이 많은 이유다. 근거 없는 의심도 아니다.
우선 모두 의아해 하는 합의사항이 복수노조 허용의 2년6개월 유예다. 노동부 장관은 유예가 아니라 준비기간이라고 하지만 석연치 않다. 6개월 정도 창구 단일화 방안을 구체화해 2년 뒤 실행한다는 설명이지만 얼마 전까지 "내년엔 반드시 시행한다"고 했던 것이라서 준비기간 치고는 너무 길다. 창구 단일화 방안은 이미 나와 있어야 했고 설사 6개월의 공론화가 필요하다 해도 1년의 준비기간이면 충분하다.
노사 실무라인 개혁관리 미숙도
더구나 유예기간 설정에 향후 정치일정이 감안됐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반대자들의 공격은 더욱 날카로워질 것이다. 내년 7월부터 노조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을 금지하면서도 중소기업의 경우 노사교섭 등 법령에서 인정하는 전임자의 노조활동시간에 대해 임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타임오프(time off) 제도를 실시키로 한 것을 둘러싸고도 벌써 논란이 많다. 구체적인 인정기준, 시간총량 상한선 등을 둘러싼 공방이 끊이지 않을 것이 명약관화하다.
어느새 노사개혁은 너무 정치화돼 버렸다. 노동운동의 정치과잉에 대한 비판이 많지만 사실 정부와 정치권은 이를 자초하는 멍석을 깔아주곤 했다. 노사정책 실무라인의 개혁관리 미숙도 이러한 정치화를 가중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