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살육의 축제에 휘둘린 한 자루 칼

■ 로마 검투사의 일생/ 배은숙 지음, 글항아리 펴냄


두 검투사가 서로 몇 번 검을 주고받다가 물고기 검투사가 방패로 상대의 방패를 쳐냈다. 그 타격으로 트라키아 검투사가 방패를 놓쳤고, 바로 그 순간 물고기 검투사가 노출돼 있는 상대의 상체에 검을 찔러 넣었다. 트라키아 검투사의 상체에서 피가 솟구쳐 올랐고, 그와 동시에 주저앉았다. (291p)

지난 2008년 로마군대를 다룬 전작 ‘강대국의 비밀’로 주목 받았던 배은숙 계명대 교수가 이번에는 로마 검투사 이야기를 펴냈다. 그간 로마사, 특히 검투사에 관한 저술은 대부분 해외 저작에 의존해왔다.


사료라고는 주로 상류층이나 시민의 관전 기록뿐인 가운데, 저자는 로마인들이 집 벽을 장식한 모자이크와 벽화, 도자기 그림, 테라코타 등과 죽은 검투사들의 비문까지 샅샅이 뒤져 당시의 흔적을 되살렸다. 이 책은 검투사들의 이전 신분과 훈련과정, 경기 당일의 일상 등을 중심으로, 당시 경기를 주최하는 상부 구조까지 포괄하고 있다. 검투사 경기가 어떻게 왜 시작됐는지, 경기를 개최한 황제나 상류인사들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것에 대한 정치적 의미까지 놓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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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주목한 것은 ‘잔인하다’는 말로만 표현되어온 로마의 검투사 경기에서 다른 측면을 찾아볼 수는 없는가다. 연극이나 전차경주보다 압도적인 인기를 누렸던 검투사 경기가 과연 그 경기가 잔인하기만 하고, 모든 로마인은 사디즘(가학음란증)적인 성향을 가졌는가 하는 의문에서 연구가 시작됐다.

노예를 ‘말하는 도구’로 여겼던 당대에, 로마인들에게는 검투사 역시 인간이기 이전에 하나의 오락도구에 불과했다. ‘살육의 축제’에 동원된 한 자루 칼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래서 로마인들은 경기 자체에는 열광하면서도, 검투사 직업은 경멸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 또 그들을 업신여기면서도 자신들에게 칼을 들이댈까 두려워했다. 지식인들도 관중의 폭력성을 비난하면서도, 젊은이들이 검투사의 용맹ㆍ근성ㆍ동료애 등을 지향해야 한다는 식의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런 검투사는 대개 전쟁포로 출신이었지만, 자유민 출신도 드물지 않았다. 이들은 막장에 돈을 보고 선택한 직업이니만큼 죽기 살기로 경기에 임했고, 관중들도 더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대부분의 검투사들은 고작 두세 번 경기장에 서보았을 뿐이고, 그나마도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패배한 검투사는 경기장에서 죽거나 숨이 붙었어도 곧 살해당했고, 대개는 비석조차 남겨줄 사람이 없었다. 2만5,000원.


이재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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