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고용안정, 이제 사치인가


한진중공업 사태는 정리해고에 대한 우리 사회의 규범이 무엇인지를 묻는 계기가 되었다. 정리해고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노동계의 비타협적인 경직성에 놀라면서도 전국의 노사와 여야, 그리고 보수ㆍ진보단체가 사업장을 전국적인 싸움터로 만들었는데도 "정리해고는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내뻗는 사업주의 무감각도 놀랄만한 수준이다. 한진중공업 노사의 전투적 태도가 문제를 악화시킨 측면이 있긴 하지만 그 자체가 이번 사태의 본질은 아니다. 한진중공업 사태가 묻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수용 가능한 정리해고의 규범은 무엇인가다. 정리해고는 최후 수단이어야 이번 공방에서 대비되는 두 시각이 드러났다. 흥미롭게도 모두 진보 진영의 문제 제기였다. 하나는 노동계가 정리해고를 무조건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시장제도로 인정하고 해고조건에 협상하는 자세를 취하라는 입장이다. 그런데 좀 상투적이고 진부하다. '한국형 정리해고'라고 할만한 명예퇴직은 대부분 노사협상을 거친다. 협상이 결렬될 때 회사 측의 마지막 카드가 정리해고이기 때문에 해고조건을 다시 협상할 여지가 많지 않다. 이에 비해 정리해고 남용을 막을 수 있도록 노동법을 고쳐야 한다는 두 번째 주장이 시류를 더 잘 반영한다. 한진중공업 사태가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이유도 과거에 수천억원의 수익을 냈고 지금 당장 도산 위험이 없는데도 회사가 정리해고를 남용하는 것으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흑자기업이라도 기술 도입과 경영 합리화를 위한 정리해고는 정당하다는 법적 근거를 이번 기회에 바꿔보자는 것이 야당을 비롯한 희망버스 측의 주장이다. 그런데 좀 성급해보인다. 정치적 구호로는 모르지만 실현 가능한 정책대안으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지난 1996년 이래 정리해고 관련 법 개정은 항상 노사를 뛰어넘는 정치적 소용돌이를 동반했다. 해고 유연성은 한때 고용 문제의 근본 처방으로 각광받았다. 1980년대 워싱턴 컨센서스와 1990년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고용전략은 보다 자유로운 해고가 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전세계에 확산시켰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어서 김영삼 정부는 세계화 개혁의 일환으로 그리고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 극복을 명분으로 정리해고의 자유를 확대하려 애썼다. 대량해고의 공포가 극에 달했던 1998년 즈음 김대중 정부는 급진적 구조조정을 독려하며 해고가 쉬워야 고용이 늘어난다고 앞장서 외쳤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전개되지 않았다. 외환위기를 극복한 후에도 기업들은 신규 채용을 극도로 꺼렸고 비정규직과 사내하청 등을 통해 직접고용 책임을 최소화했다. 수출 대기업의 수익은 연일 기록을 경신해갔지만 고용실적은 지지부진했다. 기업 사이즈를 키우는 것보다 수익성을 더 따지는 경영패턴은 이미 노동법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15년간 정부는 정리해고 규범을 법으로 바꿔보려 했지만 노동법은 이미 확립된 판례의 수준을 넘지 못했다. 비정규직 많으면 불이익 줘야 경영전략이 바뀌지 않으면 정리해고 규범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고용창출 실적이 기업의 사회적 평판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거나 고용창출에 대한 파격적 세액공제를 도입하든가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고용조정 실적에 가점을 부여하는 공공기관 평가방식을 바꾸고 비정규직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기업에 대해 정부입찰 심사 때 불이익을 주는 방법도 있다. 무엇보다 고용안정의 가치를 되살리는 전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정리해고는 경영 실패이고 회사를 살리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어야 한다는 규범을 되살려야 한다. 기업가치에 대한 금융시장의 평가만 믿고 고용조정을 일삼는 기업은 오래 살아남을 수 없다. 고용보장에 대한 심리적 계약은 우리 기업의 성공비결이었고 아직도 전세계 유수 기업의 인재확보 전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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