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상장사 '편법 임기연장' 잇달아

"내년 섀도보팅제 폐지되면 감사선임 어렵다"

"주주 주총 참여율 낮아 안건 상정도 못해"… 기업 불만 목소리

전문가들도 "아무 준비 안돼… 대안 마련할때까진 유예해야"


코스닥 상장사인 A사는 지난해 3·4분기 보고서를 통해 김모 비상근 감사의 임기를 2010년 3월26일부터 2016년 3월22일로 공시했다. 올해 3월 이 회사는 김 감사의 퇴임 공시도 없이 주주총회 소집 결의 공시를 통해 김 감사를 신규 선임한다는 밝혔다. 임기가 2년이나 남은 김 감사를 퇴임시키고 같은 사람을 다시 선임한 것이다. 김 감사는 올해 3월부터 임기가 새로 시작돼 2017년 3월까지로 임기가 연장됐다.

B사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지난해 3·4분기 분기보고서상 정모 비상근 감사의 임기는 2015년 3월28일로 기재돼 있다. B사는 A사와 마찬가지로 올 3월 주주총회에서 정 감사를 신규선임했다. 정 감사의 임기는 올해 3월부터 다시 시작돼 임기가 2년 늘어나는 효과를 봤다.


19일 한국상장사협의회와 코스닥협회에 따르면 올해 주주총회에서 A·B사처럼 감사의 임기를 늘린 상장사가 80곳에 달한다. 섀도보팅제 폐지를 반년가량 앞둔 시점에서 상장사들이 감사 선임이 곤란해질 것을 우려해 미리 감사의 임기를 연장한 것이다.

섀도보팅제는 일종의 의결권 대리행사 제도다. 예탁결제원은 정족수 미달로 주주총회가 무산되지 않도록 주총에 참석하지 않은 주주들의 투표권을 참석 주주들의 투표 비율대로 행사한다. 주주들의 무관심으로 인해 주총결의가 성립되지 않는 문제를 막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인 셈이다. 그러나 정부는 기업의 최대주주가 섀도보팅제를 활용해 경영권을 강화하는 등의 폐단이 불거지자 이 제도를 올해 말 폐지하기로 했다. 현실적으로 국내 주주들의 주총 참여율이 낮은 점을 감안하면 상장사들은 내년부터 주총 정족수 미달로 감사 선임에 대한 안건 자체를 상정하지 못할 수 있다. 감사 선임 때는 최대주주의 의결권이 제한돼 정족수 미달 가능성이 높아진다. 상장사들은 이 같은 상황을 우려해 감사 임기를 편법적으로 늘리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상장회사협의회와 코스닥협회가 상장 법인을 대상으로 섀도보팅제 폐지에 따른 어려움을 조사한 설문에 응한 상장사 902개사 중 대부분인 850개사(94.2%)가 "감사 선임이 곤란할 것"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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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뮬레이션 결과도 비슷했다. 상장협이 섀도보팅을 요청한 회사 중 감사 선임 의안이 있었던 53개사의 실제 주주총회 참석주식 수를 기준으로 섀도보팅 폐지 시뮬레이션을 실시해 본 결과 50개사(94.3%)가 의결 정족수 요건 미충족으로 인해 감사 선임에 실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장사들은 제도 폐지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상장사의 감사 선임에 대한 대주주 의결권 제한은 그대로 놔둔 채 섀도보팅제도만 없애 버리면 주주총회 성립 자체가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현행 상법에서는 감사 선임시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주식을 모두 합산해 총 소유 주식이 총 발행주식 수의 3%를 넘어갈 경우 초과분에 대해서는 의결권 행사를 제한하고 있다. 최대주주의 의결권이 3%로 제한된 상황에서 섀도보팅제의 도움마저 받을 수 없다면 의결 정족수(의결권 있는 발행주식 총수의 4분의1) 확보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정부가 섀도보팅제도 폐지와 더불어 추진하고 있는 전자투표제 도입 의무화도 주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확신할 수 없기에 대안이 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코스닥협회의 한 고위 관계자는 "시장의 우려와 달리 전자투표제 도입에 따른 비용 부담은 그리 크지 않다"며 "다만 소액 주주들의 주주총회 참여가 저조한 현실을 고려할 때 전자투표제를 통해 의결 정족수 확보가 가능할지가 의문"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제도적인 대안을 도출할 수 있을 때까지 폐지를 유예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아무런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내년부터 당장 섀도보팅제도를 폐지할 경우 주주총회 결의 불성립 등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며 "전자투표제 실시 기업에 섀도보팅의 혜택을 부여하거나 감사 선임에 대한 대주주 의결권 제한을 폐지하는 등 다양한 해결 방안을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만큼 폐지 유예기간을 연장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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