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白鳥만 고집하는 박근혜

얼마 전 가족과 함께 영화 '블랙스완(감독 대런 아로노프스키)'을 보고 모처럼 진한 감동을 느낀 적이 있다. 러시아 천재 음악가 차이콥스키의 3대 발레 음악으로 손꼽히는 '백조의 호수'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는 영화다. 성공을 꿈꾸며 완벽을 추구하는 한 발레리나의 고뇌와 시련, 라이벌을 향한 질투와 동경을 심리극으로 영상화했다. 이 영화의 백미는 뭐니뭐니 해도 역시 주인공 니나의 연기였다. 특히 시즌 개막작품 '백조의 호수' 프리마돈나로 발탁돼 순수하고 연약한 백조(화이트스완)와 악마의 화신으로 사악하고 유혹적인 흑조(블랙스완) 캐릭터를 연기한 니나의 심리묘사가 돋보였다. 재보선 불구경하는 '선거여왕' 인간 내면에 함께 자리잡고 있는 백조와 흑조라는 상반된 성격의 1인2역을 연기하는 '백조의 호수' 프리마돈나는 동경의 대상이자 난이도 높은 연기를 소화하는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니나역을 맡은 여배우 내털리 포트먼이 '명품연기'로 아카데미 등 각종 영화제의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차기 대권경쟁에서 독주하고 있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최근 행보를 보면서 문득 이 영화가 떠올랐다. '백조의 호수' 프리마돈나와 대조되는 박 전 대표의 행보가 눈길을 끈 것이다. 박 전 대표의 요즘 대선주자 연기는 너무 단조롭다. 우아한 백조 연기만 보인다. 악역인 흑조 연기는 찾기 어렵다. 지난 2004년 한나라당 대표 시절 '차떼기 정당'이라는 오명과 대통령 탄핵 역풍의 위기에서 당을 구하기 위한 '천막당사' 생활의 처절함이 보이지 않는다. 박 전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의 요청을 받아들여 4ㆍ27 재보선 다음날부터 대통령 특사로 유럽 3개국을 방문한다. 방문국으로부터 특사 자격에 걸맞은 화려한 의전을 받으며 국내외에서 글로벌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높일 수 있는 기회다. 박 전 대표로서는 전혀 손해 볼 게 없다. 반면 당내에서 이어지고 있는 재보선 선거 지원 러브콜에는 도통 묵묵부답이다. 소속 정당이 여권 스스로 인정했듯이 위기에 빠져 있고 재보선 판세가 만만찮은 국면으로 돌아가고 있지만 '선거의 여왕'이라는 그는 그저 오불관언(吾不關焉)이다. 야당 대표가 직접 재보선 후보로 뛰어들어 필승을 다짐하는 마당에 박 전 대표는 "선거는 당 지도부 중심으로 치러야 한다"며 구경꾼 입장에 서 있다. 자신이 그 정당의 대선후보로 나서 당의 지원을 받겠다면서도 지도부 역할론을 핑계로 강 건너 불구경을 하고 있는 셈이다. 박 전 대표가 벌써부터 '대세론'에 취해 몸 사리기에 나선 모습이다. 공주의 본색을 드러낸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박 전 대표는 부모를 모두 총탄에 보낸 비운의 고통을 겪고 20대 초반 나이에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해야 했던 기구한 운명으로 살았다. 하지만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18년간 철권통치를 하는 동안 온실 속의 화초로 어린 시절을 보낸 것도 사실이다. 벌써 대세론에 취해 몸 사리나 그런 그가 재래시장의 생선가게에서 생선을 손으로 덥석 집어 들거나 기름 때 뭍은 작업복 차림의 근로자를 반갑게 껴안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여전히 낯설다. 박 전 대표는 대선 무대에서 프리마돈나 역할을 제대로 하겠다면 다양한 연기로 취향이 각양각색인 관객들에게 감동을 줘야 한다. 이는 당직을 맡고 안 맡고와는 상관 없다. 블랙스완은 통념에 빠져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일이 일어나는 것을 뜻하는 경제용어로도 쓰인다. 17세기 말까지 유럽인들은 모든 백조가 희다고 믿었으나 네덜란드의 한 탐험가가 호주에서 '흑조'를 발견한 데서 비롯됐다. 박 전 대표가 자칫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한 대세론에 안주해 '안전운행'만 하다가는 내년 대선에서 자신이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했으면 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