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한 달을 하루 앞둔 14일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에 남아 있는 이들에게 일상은 아직 멀어 보였다. 더딘 수색작업으로 배 밖으로 나오지 못한 자식을 기다리는 가족들의 가슴은 더욱 타들어가는 듯했다.
피해자 가족들의 속내를 쓰다듬으려 자원봉사자들이 이들을 가슴으로 품고는 했다. 종교인들도 실종자 가족의 두 손을 꼭 잡아 구원을 빌었다. 하지만 대참사의 피해자들에게는 온전한 위무가 되지 못한 듯 보였다. 오로지 자신의 '새끼'만이 한 달간 곪아온 상처를 아마 덮을 수 있을 것이다.
14일 0시 답답함을 견디지 못한 실종자 가족들은 팽목항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목 놓아 불렀다. "○○아. 빨리 돌아와라."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한 학생의 어머니는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그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꺼억꺼억" 말라버린 울음소리를 토해내는 것뿐인 듯했다.
안산의 풍경도 다르지 않았다. 단원고 2학년 희생자 세명 중 두명이 살았던 안산 단원구 고잔동, 와동에서도 일상은 시작됐다. 지나치던 개인택시 기사들의 "밥 먹었느냐"는 말 대신 "너희 조카는 찾았느냐"는 말이 안부가 된 게 다르다면 다른 풍경이었다.
고 전모군의 어머니가 운영하던 세탁소는 '(4월)17일까지 쉽니다'라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아직 문이 닫혀 있다. 전군이 다니던 단원고에서 차마 10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아들 같은 학생들이 지나다니는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학교는 아이들의 야간자율학습이 없지만 언제나 불을 환하게 켜둔다. 어린 학생들의 입에서는 부쩍 '죽고 싶다' '때리고 싶다'는 말이 늘었다. 학교 근처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한 주민은 "요즘 엄마들은 모이기만 하면 아이들이 사고 이후에 달라졌다고 고민한다"고 전했다.
아이를 잃지 않은 주민들도 내 이웃의 비극에 마음이 편치 않은 모양이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가스 검사를 하는 게 일인 김모씨는 벨을 누르기가 겁이 난다고 한다. "지난번에 OO빌라 라동의 벨을 눌렀다가 아이를 잃은 부모가 나왔다"며 "위로도 해줄 수 없고 그저 안타까운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안산에서 재난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저 꿈이라 믿고 싶은 악몽 같은 일상 속에서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잊혀지는 것'이다.
정군의 어머니는 "아들아, 네 믿을 수 없는 죽음을 인정하는 게 죽기보다 힘들었는데 너에게 상처를 준 것 같다"면서도 "고통에 떨었을 OO을 위해 엄마가 진상규명에 힘써볼게"라며 속으로 수만번 다짐한 이야기를 편지에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