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 사면최가(四面崔歌)


시각


이 정도면 '사면초가(四面楚歌)'가 아니라 '사면최가(四面崔歌)'다. 요즘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바라보는 한국은행의 떨떠름한 심정이 그렇다.

경제부총리로 지명된 순간부터 최 경제부총리는 줄기차게 기준금리 인하를 압박해왔다. 후보자 시절 "적절한 거시정책 조합이 필요하다"고 하더니 취임 직후에는 이주열 한은 총재를 만나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조화를 이뤄나가겠다"고 한발 더 나갔다. 2기 경제팀의 경제정책 방향 발표 후에는 "지금까지 충분히 (의사가) 전달됐다"고 쐐기를 박았다. 이렇게 말했는데도 못 알아듣느냐는 말투다.


급기야 금리문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선거판까지 동원됐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7ㆍ30재보궐선거 유세장에서 "한은이 틀에 박힌 논리로 고집을 피우고 있는데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고집'이라는 표현에서는 정치인의 몰이해가 단적으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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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부양을 목표로 리더십을 백분 발휘하는 최 경제부총리의 파이팅에는 시비 걸 생각이 없다. 다만 기준금리 결정에 관한 한 엄연히 금융통화위원회에 권한과 책임이 있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가 무책임한 발언을 쏟아내는 것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는 느낌이다. 그새 시장에서는 금리인하에 대한 기대감 수위가 높아질 대로 높아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면최가'에 둘러싸인 한은은 난감한 기색이 역력하다. 한 금통위원은 "기준금리 인하가 누구 편인가의 문제인가. 내리면 굴복이고 동결하면 독립투사라는 이분법적 사고 자체가 문제"라며 반발감을 드러냈다. 또 다른 금통위원도 "분위기에 휩쓸려 금통위가 모두 금리인하에 동참했는데 훗날 판단이 잘못된 것인 게 드러나면 무슨 망신인가"라고 되물었다.

정부와 한은이 팽팽한 기 싸움을 벌였다가 결국 승자가 없었던 씁쓸한 '금리인하의 추억'이 아직 생생하다. 지난해 4월 김중수 전 한은 총재는 청와대·여당·정부의 십자포화에도 불구하고 버티다가 5월에 뒤늦게 금리를 내렸다. 줄 것 다 주고 얻은 것 없는 싸움이었다는 혹평이 뒤따랐다.

'사면초가'는 초나라 항우가 해하에서 포위됐을 때 사방에서 들려오던 초나라의 노랫소리를 뜻한다. 한나라 유방은 밤마다 군사들에게 초나라 노래를 부르게 시켜서 초나라 군사들이 고향 생각에 사기를 잃도록 심리전을 펼쳤다. 이에 절망한 항우가 읊은 시가 역발산으로 시작하는 그 유명한 '해하가'다. '힘은 산을 뽑을 듯하고 기세는 세상을 덮을 만한데/때가 불리하여 애마 추마저 앞으로 가지 못하는구나/추마저 앞으로 가지 못하니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우여, 우여, 그대를 어찌하면 좋을까' 한은이 말을 움직일 수 없다면 기준금리는 인하일까 동결일까.

이연선 경제부 차장 bluedash@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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