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 등 아ㆍ태경제협력체(APEC) 참석 정상들과의 회담에서 다자 틀 속의 대북 안전보장 문제를 공식 거론함에 따라 2차 6자회담 개최를 위한 새로운 추동력이 확보됐다.북한 핵 문제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잇단 연성(軟性) 발언은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 등 대북 협상파를 중심으로 추진돼온 대북 문서 안전보장안이 미 정부의 정책으로 채택됐음을 의미한다.
뉴욕타임스는 “북한과의 어떤 협상도 안 된다는 미 정부 내 매파의 반대에도 부시 대통령이 대북 안전보장 방안을 찾기로 한 것은 북한 핵 문제에 대한 접근법의 미묘하지만 중대한 변화”라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도 “새로운 접근법은 북한에 대한 양보로 비칠 수 있는 안전보장을 제공하기를 거부해온 백악관의 입장 변화를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6자회담 참가국들이 미국에 북한의 안보 우려에 대한 적극적인 화답을 요구해온 터여서 향후 미국의 안에 살을 보태기 위한 관련국간 협의가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북한의 반응이다. 부시 대통령은 19일 “불가침 조약은 테이블 위에 놓여 있지 않다”고 말해 북한의 기대와는 큰 차이가 있음을 확인했다. 북한은 18일 평양방송을 통해 “불가침조약 체결을 거부하는 회담에는 흥미도 기대도 없다”고 밝혔다.
이 시점에서 북한이 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다. “핵 억제력을 실물로 증명해 보이겠다”는 공언을 현실화하든가, 적당한 명분을 찾아 차기 6자회담에 나서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핵무기 개발 계획뿐 아니라 이미 개발한 핵무기까지 포함할 `5자 안전보장` 합의의 대가가 지나치게 높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의 거부로 부시 대통령의 새 접근법이 실패할 경우 북한을 강경하게 몰아붙일 명분을 갖게 된다. 이 점에서 한반도 전문가들은 북한이 핵 긴장의 고조를 바라지 않은 중국 등 주변국의 6자회담 참여 종용을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워싱턴=김승일 특파원 ksi8101@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