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IB'로 뛴다] 미국 투자은행 왜 강한가 막강 맨파워·리서치 능력 '최대 강점'금융업 대대적 규제완화로 무한경쟁 유도M&A통한 대형화·상품개발 능력도 '한몫' 뉴욕=서정명특파원 vicsjm@sed.co.kr 김희원기자 heewk@sed.co.kr 지난 7월24일 미국 최대 증권사인 메릴린치가 여러 사모펀드와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해 미국 최대 병원운영업체인 HCA를 330억달러에 사들여 “역시 메릴린치”라는 감탄사를 자아냈다. 뉴욕 월가는 물론 미국 언론이 메릴린치의 기업인수에 깊은 관심을 보인 것은 단순히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바이아웃(buy-out)이라는 점 때문만은 아니었다. 메릴린치가 미국 투자은행으로서는 전례 없는 전략을 구사했다는 점에 뉴욕 금융가가 큰 충격을 받았다. 메릴린치의 방식은 지난 80년대에 횡행했던 이른바 ‘기업 사냥꾼’의 방식 그 자체였다. 그동안 투자은행(IBㆍInvestment Bank)은 인수합병(M&A)을 중개하고 그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 고고한 방식의 사업을 해왔다. 메릴린치가 기업공개(IPO)와 주식ㆍ채권 중개 등 단순한 중개업무에 그치지 않고 HCA를 직접 인수한 것은 전례가 없던 일이다. 거액의 자본을 투입, 부실기업을 인수해 정상화시켜 다시 매각하는 방식은 리스크가 높지만 기업 상장을 중매하고 주식을 매매하는 것보다 더 큰 이문이 남는다고 메릴린치는 판단했던 것이다. 세계 IB 부문에서 압도적인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뉴욕 월가의 은행들은 21세기 들어 유럽이나 아시아의 경쟁국 IB들이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메릴린치가 기업을 직접 인수해 경영하려는 시도나 골드만삭스가 자산 210억달러 규모의 세계 최대 헤지펀드를 운용하고 있는 것도 이런 변화의 흐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의 글로벌 금융파워는 바로 IB의 국제경쟁력을 의미한다. 메릴린치ㆍ골드만삭스ㆍ살로먼스미스바니ㆍ베어스턴스ㆍ리먼브러더스…. 로어맨해튼과 미드맨해튼에 자리잡은 이들 IB에서는 이 무더위에도 정장차림의 뱅커들이 컴퓨터 단말기에 앉아 전세계 금융시장의 시시각각을 지켜보고 지구 어느 구석에서 떠도는 작은 소문에도 귀를 귀울이며 투자처를 찾는다. 실제로 미국 IB의 파워는 대기업은 물론 국가의 운명도 흔들 정도로 막강하다. 핵무기 경쟁에서도 미국에 굴하지 않았던 러시아가 98년 국가채무불이행(모라토리엄)을 선언한 것은 골드만삭스가 러시아국채 발행을 거부하면서 비롯됐다. 독일의 철강회사 합병을 중개하고 한국이 외환위기를 극복할 때 자문역을 맡았던 기관도 월가 IB였다. 미국 IB는 전세계 국방비의 절반을 쓰는 미국 군사력과 함께 팍스아메리카나를 지탱하는 두 축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금융파워, 그중 IB 경쟁력은 외적으로 연방정부의 지원, 내적으로 IB 스스로의 끊임없는 변신노력에서 기인한다. 90년대 초 최대 적대국이던 소련이 붕괴하자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글로벌 경제에서 강력한 금융의 힘이 유일한 무기”라며 금융패권을 일본으로부터 탈환하기 위한 전략을 마련할 것을 백악관에 건의했다. 이에 91년 2월 미국 재무부는 금융산업 경쟁력 약화가 미국 경제발전을 저해하고 있다고 판단, 금융산업 체질 개선에 관한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했고 곧이어 집권한 빌 클린턴 행정부는 재무부 보고서를 이행, 대대적인 금융개혁을 단행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1930년대 대공황 때 만들어진 글라스 스티걸(Glass-Steagall) 법안의 폐기였다. 미국 의회는 클린턴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2000년을 2개월 앞둔 99년 10월 마침내 이 법안을 폐기한다. 이에 따라 미국의 금융산업에는 경계가 없어졌다. 상업은행(commercial bank)이 증권업과 보험업을 하고 아울러 IB도 상업은행의 영역에 진입할 수 있게 됐다. 따라서 미국 IB 영역은 무한경쟁의 시대로 접어든다. 연방정부의 대대적인 금융산업 규제 완화는 금융업계의 재편을 예고했고 월가 IB들은 살아남기 위해 변화를 모색해야 했다. 미국 IB들이 자구책으로 선택한 방법은 새로운 사업영역 개발과 M&A를 통한 대형화였다. 프랑스계 종합금융회사인 악사(AXA)의 미국법인에서 파이낸셜플래너(CFP)로 일하는 서정훈씨는 “미국 IB들의 경쟁력은 시장 상황에 맞게 개발되는 상품개발 능력에 있다”면서 “골드만삭스ㆍ메릴린치 등 월가 IB들이 내놓는 2만개의 상품 중 소비자 투자성향에 맞는 아이템을 골라준다”고 설명했다. 월가 IB들은 평균 3만~5만개에 이르는 펀드상품을 개발해 직접 운용하거나 피델리티ㆍ뱅가드ㆍ아메리칸펀드 등 자산운용사들과 제휴를 맺어 자산을 관리한다. 한국 증권사와 투신사들이 국내 기업의 주식과 채권ㆍ주가지수에 주력하는 제한된 투자에 나서는 것과는 달리 미국 IB들은 막강한 리서치와 상품개발 능력을 앞세워 친디아ㆍ브릭스 같은 신흥시장, 상품선물 등 폭 넓은 상품을 고객들에게 선보이며 세계 투자자금을 흡수하고 있다. 월가에서는 ‘큰 것이 아름답다’는 논리가 통한다. 골드만삭스ㆍ모건스탠리ㆍ메릴린치 등 세계적인 IB들은 100년 이상 치열한 경쟁을 통해 대형화를 이뤄냈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추세는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미국 IB들의 총자산을 보면 메릴린치(4,945억달러), 모건스탠리(4,820억달러), 골드만삭스(3,038억달러), 리먼브러더스(2,470억달러), 베어스턴스(1,850억달러) 등이 대형화를 통한 몸집 불리기에 나서고 있다. 월가 IB의 또 다른 경쟁력은 맨파워에 있다. 하버드와 예일ㆍ스탠퍼드ㆍMIT 등 미국 유수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사람들이 수천만달러의 연봉을 받으며 월가 IB에서 근무한다. ‘금융산업은 결국 사람이 한다’는 경영철학을 굳게 믿고 있는 월가 IB들은 우수한 인재를 끌어들이는 데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제임스 장 리먼브러더스 수석부사장은 “미국 IB들의 인재관리는 철저하게 능력과 회사기여도에 따라 평가하는 실적주의(meritocracy)로 이뤄진다”면서 “직원의 글로벌화된 금융지식과 리스크관리 능력에 따라 IB 경쟁력이 좌우된다”고 말했다. 골드만삭스가 팀워크를 중시하고 메릴린치는 개인능력을 중시하는 등 기업문화에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직원들의 리서치와 자산관리 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유럽의 UBS가 ‘타도 미국IB’를 외치지만 월가 IB들을 따라잡지 못하는 것은 인재관리에서 현저한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 IB가 진화한다 M&A 자문보다 PI사업에 '주력' 골드만 삭스 경우-작년 PI매출 163억弗…전체수익의 66% 달해 투자은행(IB)의 사업영역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증권인수나 기업 인수합병(M&A) 및 기업구조조정 자문 등 초보적인 IB업무가 주력이었지만 최근에는 직접 돈을 투자해 수익을 내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 이른바 자기자본투자(PIㆍprincipal investment)다. 돈이 되는 것이 있으면 아예 직접 자기자본을 투입해 인수해버리는 것이다. 한단계 진화된 IB로 '선진국형 IB의 전형'이다. 그 중심에 서 있는 게 골드만삭스다. 세계 M&A자문시장의 최강자인 골드만삭스(11월 말 결산법인)의 지난해 사업구조를 보면 PI가 전체 수입의 66%를 차지한다. 전통적인 증권인수와 M&Aㆍ기업구조조정 등의 자문업무를 담당하는 투자은행(IB) 부문은 15%, 자산관리ㆍ증권서비스 부문은 19%에 불과하다. 매년 PI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골드만삭스의 PI 부문 수익(매출개념)은 163억6,200만달러로 2년 만에 57% 늘어났다. 전체 수익 가운데 PI가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 2004년 64.9%에서 지난해 66%로 높아졌다. 골드만삭스가 국민은행과 하나금융지주 지분을 인수하고 진로 등에 투자, 막대한 차익을 남긴 것도 직접투자다. 이를 바탕으로 골드만삭스의 눈부신 성장신화는 올해에도 계속되고 있다. 골드만삭스의 올 2ㆍ4분기(3~5월) 직접투자 분야 영업수익은 69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28억달러)의 2배를 넘었다. 이 가운데 채권(Fixed Income)과 통화(Currency), 파생상품(Commodities) 시장인 FICC 분야의 경우도 43억2,000만달러의 수입을 올려 지난해(15억달러)보다 3배 가까이 늘었다. 올 2ㆍ4분기 골드만삭스의 총수익과 순이익은 101억달러와 23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110%, 167% 늘어났다. 증권인수와 M&A자문 등이 포함된 전통적 IB 업무에 있어서도 세계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이는 경쟁사들이 80년대 이후 인수기업 위주의 자문을 한 반면 골드만삭스는 피인수기업 입장에서 M&A 방어 자문을 하는 차별화 전략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신훈식 한국투자증권 투자금융본부 PI센터 부서장은 "골드만삭스는 PI 분야에 있어 세계 최고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며 "골드만삭스가 최고의 투자은행으로 군림해온 요인은 금융환경의 변화를 한 발 앞서 읽고 '되는 영역'으로 남보다 빨리 진출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학률 증권연구원 연구원도 "골드만삭스는 금융시장이 발달함에 따라 투자은행의 성격이 대리인 기능에서 직접투자로 확대되고 있음을 내다보고 먼저 이에 집중해 수익의 60% 이상을 얻고 있다"면서 "리스크 역시 큰 편이지만 경쟁사보다 많은 자기자본 투자로 글로벌 IB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구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입력시간 : 2006/08/03 17: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