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현대-LG] 반도체 빅딜 총수회담 의미

현대와 LG그룹의 총수가 얼키고 설킨 반도체 빅딜(대규모 사업교환) 문제를 풀기위해 직접 협상에 나섰다.현대전자의 반도체부문과 LG반도체의 통합을 둘러싸고 4개월여를 줄다리기한 양측은 그동안의 장외(場外)설전을 마무리하고 이제 전경련의 중재아래 본격적으로 타협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총수회동이라는 상징적인 모양새에도 불구하고 가까운 시일안에 극적인 타협을 이끌어낼 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현 시점에서 협상타결이란 어느 한쪽이 그동안 지켜온 원칙을 포기할 수 밖에 없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양 그룹 총수회동의 배경=현대와 LG의 갈등은 반도체통합 평가기관인 아서 D 리틀(ADL)이 통합법인의 책임경영주체로 현대를 선정한 지난달 24일 본격화했다. 그러나 불씨는 오래전부터 잠복해있었다. 지난 11월11일 전경련이 ADL을 평가기관으로 선정한 뒤 평가기준을 둘러싸고 갈등이 불거졌고 현대와 LG는 적극 협조와 자료제출 거부라는 양 극단의 길을 걸어왔다. 결국 정부가 문제의 해결사로 전경련을 지목했고 김우중회장은 해외출장일정까지 취소하며 해결책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실무선에서 해결할 사안이 아님을 확인한 金회장은 지난달 31일 정몽헌현대회장, 구본무 LG회장 등과 직접 접촉, 4일 총수회동을 이끌어냈다. 과거의 예를 보면 그룹총수가 계열사의 문제에 직접 나설 경우 대개는 실무적인 문제를 매듭짓고 서명 등 요식행위만 남겨놓았던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번은 사정이 무척 달라보인다. 문제의 매듭이 하나도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그룹총수가 공개적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정부와 금융권이 LG에 대해 금융제재를 가하겠다고 나선 상황에서 두 그룹은 『빅딜을 위해 총수까지 나섰다』는 성의를 보이며 나름대로 접점을 찾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신속한 합의를 장담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은 그만큼 낮아졌다는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전경련의 입장=전경련은 반도체 통합의 중재자로서 상당한 부담을 갖고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마저 『전경련이 나서서 해결하라』고 독촉하는 상황이고 金회장은 해외출장일정을 취소한 채 중재에 나섰다. 그 첫 결실이 바로 4일의 양그룹 총수회동인 셈이다. 金회장은 회동을 주선하고 지난 3일 해외출장길에 올랐다. 하지만 현재 전경련의 입지는 극히 제한돼 있다. 손병두(孫炳斗)부회장은 4일 『전경련은 당사자들이 만나서 얘기하도록 장(場)을 만들어줄 뿐』이라며 『별도의 중재안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어차피 두 그룹이 각자 이해를 따져 행동할 텐데 무리하게 제3의 안을 내놓을 이유가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도 전경련은 두 가지 중요한 원칙을 밝혀놓고 있다. 우선 ADL의 평가결과를 뒤집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孫부회장은 『합의된 절차를 밟아 평가결과가 이미 나와있고 정부가 LG에 대한 금융제재까지 나선 상황』이라며 『현재로선 LG가 주장하는 재평가는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분명히 말했다. 또 하나는 ADL이 내놓은 것으로 알려진 7가지 통합방안에 대한 입장이다. 孫부회장은 『ADL이 내놓은 대안은 양사간 합의가 전제돼야 하는 것』이라며 『합의가 안되면 대안은 의미가 없다』고 밝혔다. 결국 평가결과를 기정사실화하고 모든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점에서 현대측 입장에 더 가까운 셈이다. ◇논의의 쟁점=관건은 역시 LG측이 ADL의 평가결과를 인정하느냐다. 전경련 입장대로 양측이 합의한 대로 일정이 진행돼왔고 정부가 문제를 꼬이게 만든 장본인으로 LG를 지목, 금융제재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는 현대는 지난달 31일 박세용(朴世勇)구조조정본부장을 통해 『7대3 지분비율로 통합법인을 설립키로 한 합의원칙은 반드시 이행돼야 한다』면서 지분율을 탄력적으로 조정하거나 다른 계열사를 떼어주는 보상빅딜 가능성을 일축했다. LG는 지난 12·7 합의의 원칙까지 부인하는 입장이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다. 문제는 ADL의 평가기준과 결과라는 것이다. 4일 총수회동은 이런 원칙을 재확인하고 상대를 설득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극적인 타협의 여지까지 막아놓은 것은 아니지만 첫 만남인만큼 원칙에 관한 의례적인 얘기만 오간 것으로 보인다. ◇원칙에 합의한다면 대안은=ADL은 현대를 경영주체로 선정하면서 7가지 통합방안을 제시했다. 첫째는 지분율 7대 3이라는 기존 원칙에 따라 순조롭게 협상을 마무리하는 것, 둘째는 현대가 100% 지분을 갖고 전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문제는 채권금융단의 출자전환을 주내용으로 하는 3·4안과 여러 가지 전략적 제휴모델을 담은 5·6·7안이다. 3안은 채권금융단이 지분의 51%를 갖고 두 그룹이 각각 24.5%의 지분을 갖는 것이며 4안은 채권금융단이 40%를, 두 그룹이 30%씩을 갖는 안이다. 모두 경영주체가 현대라는 점에선 차이가 없다. 전략적 제휴는 생산부문만을 통합하는 안 연구개발부문과 생산부문을 통합하는 안 연구개발·제조·지원·테스트 통합회사와 디자인·마케팅·판매 담당회사를 별도 설립하는 안 등이다. 현재 LG는 원칙적으론 ADL평가결과를 전면 부인하는 입장이지만 내심 전략적 제휴는 가능하다는 생각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 가운데서도 연구개발부문만 우선 통합, 투자비용을 절감하는 정도에 그치고 이후 본격적인 통합은 별도의 실사를 거쳐 경영주체를 다시 선정하자는 입장이다. 물론 현대는 아직 ADL의 평가결과부터 인정하라는 원칙을 고집하고 있다. 【손동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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