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글로벌 경제 저유가 역풍] 깊어지는 이주열 '물가 트라우마'

유가 더 떨어지면 2.4% 물가전망 또 수정해야 할 판…

금리인하 압박 더 거세질듯

/=연합뉴스


"물가 얘기만 나오면 아픕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0월 경제동향간담회 때 경제연구원장 등 참석자들에게 물가를 두고 했다는 발언이다. 다른 강연에서는 "목표보다 (물가가) 많이 낮다 보니 한국은행의 역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생겨 그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도 했다. 소비자물가가 한은의 중기물가안정목표치(2.5~3.5%)를 한참 밑도는 1% 초반을 2년 가까이 이어가자 곤혹스럽다는 얘기다. 최근 한은이 발표한 10월 소비자물가는 1.2% 상승을 기록해 24개월째 1%대를 나타냈다.

이 때문인지 이 총재는 "국제유가가 너무 신경이 쓰인다"는 발언을 사석에서 종종 털어놓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국제유가의 하락은 소비자물가의 상승률 둔화요인이 더 강해진다는 것을 뜻하는 만큼 하락 추세가 반갑지 않다는 것이다. 한은은 내부적으로 "유가가 더 떨어지면 내년 물가전망치인 2.4%를 조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기류가 강하다. 연간 4차례 경제전망을 내놓은 한은은 내년 1월 첫 번째 수정 전망을 발표한다.


이런 분위기 탓에 한은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결정 여부에 주목했다. 감산 결정으로 유가가 올라야만 소비자물가의 상승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 감산을 내심 기대(?)했지만 지난달 28일 OPEC의 결정은 현재 생산량 유지였다. 이날 국제유가는 73.33달러(두바이유 기준)까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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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물가는 앞으로 더 떨어질 공산이 커졌다. 1.2%인 소비자물가(10월 기준)는 유가의 추가 하락 등의 여파로 1%대가 깨질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조짐은 엿보인다. 11월 말 발표된 10월 생산자물가지수는 8월부터 3개월 연속 떨어진 가운데 낙폭도 더 커졌다. 생산자물가는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반영된다.

그동안 한은은 물가 이야기만 나오면 작아졌다. 2년 4개월째 물가 타킷을 밑돌아 한은으로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지경이다. 국정감사 때는 책임까지 추궁 받았다. 급기야 이 총재는 국회를 향해 "물가목표를 미달한 데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는 '사과 발언'도 했다.

장기 저물가는 물가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삼는 한은의 정책 기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 당장 디플레이션 논란이 재연되면서 추가로 금리를 인하하라는 대외적인 압박에 시달릴 가능성도 높아졌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이달 중 11월 물가가 더 떨어지고 연말 경제지표들도 좋지 않을 경우 기준금리 인하 등에 대한 압박이 더욱 거세질 텐데 내심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7월부터 10월까지 4개월의 악몽이 떠오른다고도 했다. 물가 1%대가 장기간 이어지자 디플레이션 논쟁이 붙었고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척하면 척' 발언으로 중앙은행 독립성 문제도 불거졌다.

물론 국제유가 하락은 우리 경제에 긍정요인이 더 많기는 하다. 골드만삭스는 국제유가가 20% 하락할 경우 국내총생산(GDP)은 1%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예측했다. 현대경제연구원도 국제유가가 10% 하락하면 우리 경제는 △소비 0.68% △투자 0.02% △수출 1.19%씩 증가하고 GDP는 0.27%가 상승한다고 분석했다. 저성장 고착화 조짐에 해외 수입에 전량 의존하는 석유의 가격하락이 그나마 다행인 셈이다. 하지만 국제유가발 디플레이션 논쟁이 다시 불붙는다면 한은으로서도 입지가 더욱 흔들릴 수밖에 없다. 또 다른 한은 직원은 "이 총재가 저물가에 대해 좀 더 일찍 공세적으로 나가지 못한 모습은 못내 아쉽다"고 지적했다. 저물가에 대한 트라우마를 진즉 벗어나야 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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