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에서 내전이 확산될 조짐이 보이자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들이 이탈하며 코스피지수가 하락했다. 증시전문가들은 이라크 내전이 정유지대인 남부지역까지 퍼지면 국내 증시의 발목을 잡을 악재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12일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20.80포인트(1.03%) 내린 1,990.85포인트로 거래를 마쳤다. 이날 외국인은 국내 증시에서 22거래일 만에 순매도세로 돌아서며 2,542억원어치를 내다팔았고 기관도 850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이날 외국인과 기관의 순매도는 전날 이라크 내전이 커질 조짐에 국제유가가 일제히 오르며 미국 증시가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전날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는 전 거래일보다 2.04% 오른 106.53달러를 기록했고 북해산브렌트유(2.79%), 두바이유(1.59%) 가격도 상승하며 이라크 내전상황을 반영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원유수입비중은 이라크가 9.3%에 달해 국내 대부분의 업종이 영향을 받는다.
이라크에서 급진 수니파 무장단체인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가 수도 바그다드까지 진격하고 있다는 소식에 중동 지역 수주와 원유와 관련된 건설·정유·화학·항공 대표주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이날 이라크에 진출한 국내 건설사인 대우건설(047040)(-4.47%)과 삼성엔지니어링(028050)(-2.35%), 현대건설(000720)(-1.86%)이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이라크 내전사태에 따라 국내 건설업체들의 공사기간이 지연되거나 결제가 이행되지 않는 등 사업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선일 NH농협증권 연구원은 "국내 건설사 가운데 대우건설과 삼성엔지니어링이 이라크에서 공사를 하고 있고 GS건설(006360)과 현대건설은 올해 카르발라 프로젝트를 수주해 공사에 들어간다"며 "반군들이 정유플랜트들이 있는 남부까지 내려올 경우 국내 건설사들의 공사가 중단되거나 납기가 연기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올 들어 100달러선에서 하향 안정화됐던 원유 가격이 상승세로 방향을 틀 수 있다는 전망에 항공주도 영향을 받았다. 대한항공은 1.58% 빠졌고 아시아나항공도 0.62% 내렸다.
신민석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현재 이라크 내전상황이 당장 항공주들에 악재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하지만 항공사들의 전체 사업비용의 40%가 원유와 관련된 것을 고려하면 이라크 사태 장기화 여부가 주가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유가가 상승하면 정유·화학주에는 호재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체돼 있던 유가가 상승 방향으로 움직이면 정유·화학업체에 대한 투자심리가 개선되기 때문이다.
박충재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유가가 계속 상승한다고 가정하면 그동안 사들였던 재고 원유의 가격도 오를 수 있어 정유업체들에는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며 "화학주들은 원유 강세가 석유제품 가격 상승까지 이어질지 지켜봐야 하지만 이라크 사태가 마이너스요인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이어 "다만 한국타이어와 금호타이어같이 석유화학 원재료를 사서 생산하는 업체는 원유 가격 상승으로 롯데케미칼과 LG화학 등의 업체가 생산을 줄이면 재료원가가 올라 악재가 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이라크 사태가 국내 증시에 단기악재로 부각되고 있지만 아직 증시체력을 해칠만 한 이슈는 아니라고 전망했다.
지기호 LIG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은 "이라크 사태가 큰일이라면 미국 증시 하락에 이어 중국·일본 증시도 내려야 하지만 유럽은 보합세, 일본 증시는 오히려 올랐다"며 "이날 증시 하락은 삼성전자(005930)의 2·4분기 실적불안 등으로 인한 자금이탈 영향이 더 컸고 이라크 사태는 아직 잠재적 위협 수준으로 내전 추세를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