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에 환호했던 美, 삼성 신무기에 '기겁'
[코리안 뉴딜로 불황 넘자] 내일의 캐시카우 창출을 위하여R&D 세액공제 늘려 IT 투자 유도… 미래 먹거리 키워라정권마다 IT정책 내놨지만 전시행정에 용두사미 그쳐정부차원 대대적 선행 투자 인력양성 등 체계적 지원을
김상용기자 kimi@sed.co.kr
지난 2007년 6월 애플이 아이폰을 첫 출시하며 돌풍을 일으켰을 때 미국은 환호성을 질렀다. 정보기술(IT) 종주국으로서의 자존심을 애플이 세워준 것이다. 최근 들어 애플을 보는 미국의 시각들이 많이 달라지고 있지만 스티브 잡스 생존 내내 애플은 '미국의 상징'으로 대접 받았다.
하지만 스마트폰 신화로 대변되는 애플은 삼성전자라는 강자를 만나게 된다. 애플의 선제공격에 놀란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개발에 매진, 2012년 3ㆍ4분기에는 애플을 제치고 1위에 올라섰다.
전세계가 놀란 삼성전자의 기적적인 추격은 바로 연구개발(R&D)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스마트폰 개발에 막대한 R&D 자금을 투자했고 연구인력들은 24시간 내내 연구실을 떠나지 않았다. 피곤하면 사무실 옆에 마련한 야전침대에 몸을 맡기면서 'R&D'발 신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한국의 저력에 놀란 것일까? 최근 재선에 성공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공약으로 공격적인 IT R&D 지원을 제시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재임기간 중 IT산업의 발전을 위해 R&D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범위를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정책을 실시하면서 미국 IT산업 부흥을 이끌고 있다.
◇새로운 정부마다 내놓는 IT뉴딜정책=사실 우리나라도 역대 정권마다 대대적인 IT 인프라 투자정책을 내놓았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는 정부가 10조원 규모의 한국형 뉴딜정책으로 침체된 경제 되살리기에 팔을 걷어붙였다. 이 중 2조원을 국가 데이터베이스 확충과 위성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 등에 투자해 한국형 IT뉴딜정책을 본격 가동했다. 하지만 이 같은 거창한 계획은 결국 흐지부지되면서 IT뉴딜이라는 구호만이 역사책 속에 남아 있을 뿐이다.
이명박 정부도 그린 IT라는 프로젝트를 전면에 내세웠으나 용두사미였다. 현 정부는 IT를 통한 에너지 절감에 핵심 포인트를 두고 다양한 구상을 내놓았지만 무엇 하나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사문화된 정책이 돼가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의 IT정책이 번번이 용두사미의 전철을 반복하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IT정책이 장기적이고 거시적으로 수립, 시행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당장 화려하게 보이도록 꾸미는 전시행정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게 관련 업계의 지적이다. IT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국 IT기업에 필요한 것은 세상을 바꿀 신제품 출시와 그에 따른 정부 지원"이라며 "이 같은 IT 육성전략은 기업들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전시행정에 그치고 있다"고 말했다.
구호뿐인 IT 육성정책은 관련 분야에 대한 투자규모를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실제로 지난 3년간 정부의 IT R&D 투자규모는 수조원에 불과하다. 2009년의 경우 IT 투자금액은 2조804억원을 기록한 뒤 2010년에는 2조3,571억원, 지난해에는 2조6,468억원으로 증가했지만 규모로 보면 초라하기 짝이 없을 정도다.
정부가 최근 내놓은 기가코리아 사업도 호랑이를 그리려다 고양이를 그리는 꼴이 될 공산이 크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당초 정부는 이 사업에 1조4,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했지만 예산심사 과정에서 5,500억원 규모로 대폭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가코리아 사업을 통해) 정부는 8년간의 장기간 투자로 국내 IT산업 인프라를 확충한다고 했지만 예산배정 과정에서 사업규모가 3분의1로 줄어들었다"며 "과거 정부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게 되면 이마저도 또다시 좌초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IT 인력 양성에도 정부는 인색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부가 2010년 4,011억원을 투자해 고급 IT 인력을 양성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사실은 1997년부터 꾸준히 진행해온 사업에 불과했다.
IT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IT 인력 양성 같은 프로젝트를 추진한다고 했지만 이미 예전부터 벌여온 사업으로 새로운 것은 없었다"며 "정부는 항상 구호를 앞세워 IT를 살린다고 하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기업들 세액공제 늘려 R&D 장려해야=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국내 IT 육성을 위해서는 정부 차원보다 개별 기업 지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나의 예로 개별 기업의 R&D 투자에 대한 조세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문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한 관계자는 "정부 차원의 대규모 R&D 투자가 어려운 상황에서 개별 기업들의 생존을 위한 R&D 세액공제를 축소할 경우 기업의 경쟁력이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실제 전경련에 따르면 2010년 기업 R&D 투자금액은 32조원, 세액공제 금액은 투자금의 5.9%에 불과했다. 100원을 투자해 6원의 세액공제를 받은 꼴이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글로벌 금융위기 등 세계적인 경기불황에도 불구하고 국내 기업들이 R&D 투자를 늘려 현재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며 "R&D 조세지원이 뒷받침돼야 기업의 투자가 늘어나게 돼 경쟁력 제고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IT를 발판 삼아 한국형 뉴딜정책으로=전문가들은 조세지원과 별개로 정부 차원의 집중적이고 대대적인 투자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새로운 정부가 당면한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한국 산업의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높은 IT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를 통해 수출 위주의 국내 산업 지형에 색채를 입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보통신기술을 통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국가적 R&D 싱크탱크를 구축하는 한편 R&D 인력을 양성하고 농업 등 기존 산업에 IT를 덧입혀 경쟁력을 강화하는 다양한 방안에 대한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IT 인력 양성 등 정부 차원에서 지원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이 있지만 정부는 새로운 구호만을 찾아서 투자를 하려는 경향을 보인다"며 "개별 기업들이 자체 경쟁력을 갖기 위해 정부가 뒤에서 지원하는 인력 양성부터 제대로 추진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국이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모델로 만든 '테크시티'에 IT 인력들이 대거 몰려들면서 1,250개의 벤처기업이 탄생하고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 등이 이곳에 연구개발센터를 건립할 예정이다. 바로 이것이 정부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IT 인프라 투자의 바이블이라고 전문가들은 꼽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