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2002 화제의 인물] 숱한 영욕의 세월속 뜨고 지고

9.11테러에 따른 대(對) 테러와의 전쟁 등으로 세계가 어수선했던 올 한해 지구촌 곳곳에서는 크고 작은 선거가 잇따랐고 특히 중국 대륙의 경우 후진타오(胡錦濤) 총 서기가 권력의 전면에 나서 개혁의 회오리를 예고하는 등 새로운 지도자들이 국제무대에 잇달아 신고식을 치렀다.또한 칼리 피오리나 휴렛패커드(HP) CEO, 양빈(楊斌) 어우야 그룹 회장 등은 세계경제 침체의 와중에서도 화제를 몰고 다닌 주역이었으며, 엘리엇 스피처 뉴욕주 검찰총장은 유례없는 미 기업 회계부정과 관련, 세간에 많은 화제를 뿌렸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결산해보면 그 만큼이나 많은 수의 '지는 별'과 '떠오른 별'이 나오게 마련. '2002 지구촌 화제의 인물' 6인을 선정, 이들의 면면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 후진타오 신임 중국 당 총서기 개혁이끌 中차세대 리더 올라 '후 이즈 후(Who is Hu)?' 지난 11월 중국 공산당 제16차 전국대표대회에서 후진타오(胡錦濤ㆍ60) 국가 부주석이 당 총서기로 선출되자 '후가 누구인지'에 세계인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이미 10년전 2세대 지도부 수장인 덩샤오핑(鄧小平)에 의해 차차기 지도자로 낙점을 받은 그였지만 3세대 지도자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의 그늘에 가려 자기 목소리를 드러낼 기회가 없었기 때문. 몸을 낮추며 천시(天時)를 기다리는 처세술을 보여온 것이다. 그는 철저하게 덩샤오핑의 개혁ㆍ개방 노선을 받드는 등 개혁 및 실용주의 성향이 짙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1985년 중국내 최빈곤 지역중 하나인 구이저우(貴州)성 성서기로 부임해 과감하게 개혁을 추진한 것과 1988년 티벳의 독립운동을 진압한 사실은 부드러운 신사 같은 외모와는 또 다른 그의 강한 면모를 보여준다. 실제 그는 당 총서기 취임 연설을 통해 개혁ㆍ개방 지속과 현대화 사업 추진을 선언했다. 또 실용주의 노선을 강조해 민간부문을 확대하고 그동안 배제했던 자본가 계급을 끌어들일 것임을 시사했다. 이를 통해 중국을 '샤오캉(小康)' 사회(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사회)로 진입시킨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13억 인구 대국을 이끌어갈 후 총서기의 앞날이 순탄치 만은 않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그들은 ▦빈부격차 ▦지역갈등 해소 ▦부패 척결 ▦제도 개혁을 후 총서기가 넘어서야 할 4대 난제로 꼽고 있다. ■ 칼리 피오리나 HP CEO '세기의 합병' 성사시킨 여장부 '세기의 합병'이라 불리는 지난 5월 휴렛패커드(HP)와 컴팩의 성공적인 결합 뒤에는 HP의 최고경영자(CEO)인 '여장부' 칼리 피오리나가 있었다. 그녀는 지난 해 9월 양사의 합병을 전격 발표한 이후 대주주인 창업주 가문의 반대에 경질 위기까지 몰렸지만 특유의 뚝심으로 올해 정보기술(IT) 업계 사상 최대 규모인 187억달러 규모의 합병을 성사시켰다. 사실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피오리나는 '악몽'에 시달렸다. 지난해 양사의 합병을 발표한 직후부터 주가가 폭락해 투자자들은 등을 돌렸으며 HP 대주주인 휴렛가(家)는 "위기도 아닌데 왜 위험을 떠안는 합병을 추진하느냐"며 발목을 잡았다. 그러나 그녀는 '불도저식 밀어붙이기'를 감행, 양사의 합병을 이끌어 냈으며 합병 반대파의 수장격인 창업주 가문 대표 월터 휴렛으로부터 "합병을 위해 최선을 다해 돕겠다"는 항복선언까지 받아내 외면상 '완벽한 승리'를 일궈냈다. 통신사 AT&T의 영업사원으로 시작, 루슨트 테크놀로지의 CEO를 거쳐 HP의 총수 자리에까지 오르며 일약 업계의 '신데렐라'로 떠오른 피오리나. 그녀는 올해 경제 전문 포천이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사업가'에 5년 연속 1위에 오르며 최고의 여성 기업인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줬다. 또 얼마 전에는 미 CNN머니 방송이 선정한 '올해의 여성'과 '2003년 가장 주목할만한 인물'에 연달아 오르는 등 2002년의 피날레를 근사하게 장식했다. ■ 엘리엇 스피처 뉴욕주 검찰총장 금융범죄 소탕 '월가의 포청천' '경제 범죄 소탕, 아직 멀었다.' 올해 시티그룹, 크레디스위스퍼스트보스턴(CSFB),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JP모건체이스 등 월가의 유수 금융기관에 총 15억달러의 벌금을 부과한 엘리엇 스피처 뉴욕주 검찰총장. 연말이 다가와도 그의 칼날은 무뎌지지 않고 있다. 스피처 총장은 미국 정부나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손 댈 엄두도 못냈던 월가의 고질적인 부정ㆍ부패 관행에 철퇴를 가하며 투자자를 보호하고 시장질서를 회복하는데 올 한해가 모자랐다. 지난해 투자은행인 메릴린치가 자사의 이해관계에 따라 기업 가치를 평가한 사건을 계기로 월가의 부정ㆍ부패 척결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올해 수많은 기업 회계부정과 애널리스트 배임 사건이 발생하면서 강도 높은 수사를 벌이며 월가를 휘젓고 다녔다. 그의 이 같은 활약상을 높이 평가한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그를 '올해의 십자군 전사'에 선정하기도 했다. 스피처 총장은 열흘 전 시티그룹 등 유수의 금융기관들에게 투자자 오도 혐의로 총 15억달러라는 사상 초유의 벌금을 부과했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배임 혐의를 받고 있는 유명 애널리스트들에 대한 조사를 멈추지 않고 있다. 올해 발생한 수많은 기업 회계부정 사건과 유명 애널리스트들의 배임혐의 등은 투자자들에게 월가에 대한 커다란 실망과 불신을 안겨 줬지만 '깨끗한 월가'를 만들기 위해 고분분투하는 스피처 총장의 모습에서 투자자들에게 신뢰와 희망을 되찾고 있다. ■ 다나카 고이치 학사출신으로 노벨상 타 눈길 장기 불황과 이어지는 기업 감원으로 '고개 떨군'일본 직장인들에게 다나카 고이치(田中耕一)라는 이름은 2002년 최대의 쾌거로 기억된다. 학사 출신의 평범한 회사원인 그가 세계의 기라성 같은 과학자들도 탐을 내는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자 일본 열도는 말 그대로'다나카 신드롬'에 휩싸였다. 아르바이트에 쫓기느라 대학을 유급당하고 졸업 후에는 소니 입사시험에 낙방, 시마즈 제작소에 입사한 후로는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해 온 40대 일본 샐러리맨의 전형인 다나카 주임. 노벨상 수상 소감 발표장에 푸른 작업복 차림으로 나타난 그의 모습은 일본 직장인들에게 새로운 성공 신화를 제시했다. 게다가 연구에 몰두하고 싶다며 승진시험도 치르지 않았던 그의 소박한 성품과 꾸밈없는 태도도 '다나카 열풍'에 한 몫을 했다. 노벨상 발표 후 두어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젊은 여성들이 희망하는 '최고의 맞선 상대'로 꼽힐 정도로 그에 대한 인기는 폭발적이다. 시마즈 연구소는 주가 폭등과 함께 8억여엔의 광고 효과를 누리는 등 그의 후광을 톡톡히 입은 반면, 20년 전 면접시험에서 그를 떨어뜨린 소니는 땅을 쳤다는 후문도 들렸다. 노벨상 수상 공적인 인체내 단백질 구성 분석 연구에 대한 기여도가 그다지 높지 않다는 자격 시비와 관련, 유명세도 치렀지만, '다나카 신드롬'은 올해 일본인들에게는 몇 안 되는 '희망의 사건'이었다. ■ 양빈 어우야그룹 회장 北 신의주 특구장관 일장춘몽 지난 9월 북한이 신의주 경제특구 초대 행정장관으로 지명하면서 하루아침에 전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던 양빈(楊斌ㆍ39) 어우야(歐亞)그룹 회장.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공산주의 국가인 북한이 독자적인 입법ㆍ사법ㆍ행정권을 갖는 경제특구를 마련한다는 것 자체도 빅 뉴스였지만 외국인 자본가를 특구 장관으로 영입했다는 사실은 뉴스의 가치를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 양빈 회장은 네덜란드 국적의 화교로 지난 1987년 화훼 생산ㆍ유통업체인 어우야를 창업했으며 1990년대초 중국 부동산 건설시장에 뛰어들면서 큰 돈을 벌었다. 지난해 75억 위앤(약 1조1250억원)의 자산을 보유해 미국의 경제전문 포브스가 선정한 중국 2대 갑부에 오르기도 했다. 그가 신의주 특구의 행정장관으로 선정될 수 있었던 것은 지난해 북한의 평양원예총회사와 화초를 재배하는 '평양 유럽ㆍ아시아합영회사'를 설립을 계기로 대북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섰기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특구 장관 지명 이후 고(故) 김일성 주석과 외모가 비슷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배다른 형제 사이라는 소문이 날 정도로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경제적 이익 추구과 외교적 헤게모니 장악이라는 숨겨진 이유이외에도 중국 공안 당국이 공산당 16기 전국대표대회를 앞두고 자본가 길들이기 차원에서 양빈을 사기 및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전격 기소하면서 북한의 신의주 경제특구 지정은 한낱 해프닝으로 그치고 말았다. ■ 버나드 에버스 前월드컴 CEO 회계조작·부패의 대명사 낙인 '올해의 파렴치한(CNN)', '2002 최악의 인물(ABC)' '모르쇠CEO의 원조(NYT)' 버나드 에버스 전 월드컴 CEO가 올 연말 각 언론사들로부터 받은 '명예로운(?)'훈장들이다. 버나드 에버스는 올해 미국 기업 사상 최대 규모의 기업 도산을 만들어낸 장본인. 월드컴 CEO재직 당시 회계조작을 통해 90억 달러에 달하는 매출을 부풀린 혐의를 받고 있다. 여기에 자기 회사에서 막대한 자금을 대출 받아 개인사업에 거액을 투자한 혐의와 부당 내부거래 의혹까지 받는 등 미국 부패 기업인의 대명사로 통하고 있다. 특히 이 같은 '버나드 에버스'로 대표되는 미국 기업인들의 부정 행각들은 올 한해 '주식회사 미국' 의 신뢰 추락과 미국을 포함한 전세계 주식시장 침체를 부추긴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에버스는 한때 낮엔 우유배달, 밤엔 경비원으로 근무하는 등 어려운 시절을 겪다가 1983년 중장거리 전화업체 LLDS에 투자한 것을 계기로 마침내 85년 CEO에 등극, 통신 업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1995년 회사의 이름을 월드컴으로 바꾼 에버스는 일개 지역 통신회사를 미국 2위 장거리 통신업체로 키워냈지만 무리한 인수합병 이후 불거진 자금난을 감추기 위해 대규모 회계조작을 저질러 결국 급격한 몰락을 맞게 된다. 그는 월드컴의 회계 부정 사건에 대한 조사과정에서도 침묵으로 일관, '모르쇠 CEO'란 신조어를 유행시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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