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동십자각] 사재기 전염병

누구나 아는 박지원의 「허생전」 이야기다. 이 대목에서 우리 조상들의 현명함(?)을 엿볼 수 있다. 자본주의가 아직 발아되지도 않은 농경사회에서 시장의 흐름을 꿰뚫어보고(?) 큰돈을 번 것이다.요즘 술집에서는 소주가 없다고 아우성이다. 내년부터 주세율이 인상돼 소주값이 오른다고 하자 소주가 자취를 감추었다. 소주회사에서는 충분히 공급하고 있는데 중간상인들이 몇천 상자씩 사재기를 해 나대지에 쌓아놓는다. 중간상인들이 돈을 한번 쉽게 벌어보자고 나선 것이다. 그러자 이제 중간상인은 물론 일반인들까지 가세해 박스째 집에 사다 놓는다. 슈퍼나 할인점이 문을 열면 1시간 내에 소주가 동이 난다. 심지어는 백화점까지 가서 싹쓸이를 해오고 있다. 낑낑거리며 무거운 소주상자를 들고 가는 풍경이 자주 눈에 띈다. 소주업계도 미칠 지경이다. 지금은 수요가 크게 늘어나 술이 없다고 아우성이지만 사재기의 후유증으로 내년부터 생산라인을 줄이고 직원들을 휴가 보내야 할 형편이라고 하소연 한다. 중간상인들은 이참에 한몫 단단히 잡아보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몸에 나쁘니술을 먹지 말라고 주장하는 일반사람들은 왜 술을 사재기하는가. 몇푼이라도 아껴보자는 것이다. 지난해 이맘때도 올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담배 사재기였다. 담뱃값이 오른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디스」 담배 사재기로 소비가 폭발했다. 이 여파로 올해 2월까지 판매가 줄어드는 웃지 못할 현상도 나타났다. 또 해마다 명절 때쯤이면 사재기는 극에 달한다. 쇠고기·조기 등 제수용품들의 가격이 중간상인들의 사재기로 치솟아오른다. 과일값도 천정부지가 된다. 올해도 추석대목을 겨냥한 대형 유통업체의 사재기로 물량이 부족해지자 재래시장의 생필품값이 백화점과 할인점을 웃도는 기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같은 사재기현상은 사이버시장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도메인 등록이 시작되자 인터넷 주소쟁탈전이 벌어졌다. 도메인을 무더기로 선점하는 사재기가 일어난 것이다. 가격이 오르거나 공급이 달릴 조짐을 보이는 상품이면 무조건 많이 사두고 그러면 돈을 번다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다. 사재기는 경제의 흐름을 끊는다. 전염성 강한 질병이다. 다른 사람이 모두 소주를 사서 쟁여놓으니 내가 사지 않으면 바보처럼 보이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중간상인들은 무딘 칼이지만 제재를 받는다. 그러나 평범한 우리들이 단돈 몇천원에 몸에도 좋지 않다는 술을 베란다에 박스째 몇달씩 쌓아놓아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때다. 이제 먹을 만큼만 사자. 그리고 가격이 오르면 그만큼 덜 먹자. 姜彰炫(생활건강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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