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통화정책보다 원하는 곳에 지원할 수 있는 신용정책을 강화하겠다고 천명해왔다. 이에 맞춰 내놓은 도구가 바로 총액한도대출이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한국은행이 새 정부의 '창조경제'에 코드를 맞춰 도입한 창조형 중소기업 육성을 위한 총액한도대출제도가 도입 초기부터 공전하고 있다. 시행 한 달간 대출금액이 겨우 100억원대에 그치는 등 당초 계획에 한참 못 미치는 실적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2일 시중은행에 따르면 지난 6월 한 달간 신한ㆍ우리ㆍ국민ㆍ기업은행 등 4개 은행의 기술형 창업기업대출 실적을 집계한 결과 118억8,000만원으로 나타났다. 은행별로 신한은행이 지난달 7일부터 25일까지 42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은 각각 39억8,000만원, 37억원이었다. 기업은행은 7월부터 대출을 시작할 예정이라 아직 실적이 없다.
한은은 지난달 3일 16개 은행으로부터 기술형 창업기업대출 취급계획을 제출 받은 결과 6월부터 9월까지 넉 달간 총 2조5,165억원의 대출이 창업 초기 중소기업에 풀릴 것이라고 발표했다. 특히 신한ㆍ우리ㆍ국민ㆍ기업 등 4개 은행은 4개월간 은행별로 3,000억~6,000억원을 대출하겠다는 계획을 제출했다. 산술적으로 봐도 한 달에 700억~1,500억원, 도입 초기임을 감안해도 첫 달에 백억원 단위의 실적이 나와줘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출발은 기대에 못 미쳐 보인다. 초반에 경쟁적으로 한은에 대출계획을 제출했던 은행들도 난감한 표정이다. 신한ㆍ우리ㆍ국민ㆍ기업은행은 내년 6월까지 은행별로 1조원 이상을 사전한도로 받았다. 은행의 한 관계자는 "차입금리를 낮출 수 있는 기회로 보고 들어왔는데 예상보다 받아온 한도를 채우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시중은행들이 가장 많이 지적하는 것은 한은이 정한 조건이 좁다는 점이다. 기술형 창업지원한도의 지원 대상은 창업 후 7년이 경과되지 않은 기업으로 특허권이나 정부ㆍ유관기관의 공인된 고급기술을 보유하거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이 높은 중소기업이다. 이 관계자는 "지원 대상 기업의 구체적인 조건을 디테일하게 정해놓다 보니 은행의 재량권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조건이 좀 더 탄력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장기화하는 경기부진과 이에 따른 기업들의 투자 기피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기술형 창업지원대출의 경우 신용대출금리는 1.51%포인트, 보증ㆍ담보대출은 0.79%포인트 낮지만 기업들이 은행 대출을 못 받는 것은 금리 부담 때문이 아니라 불투명한 경기전망 때문이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출 받을 만한 중소기업은 이미 받았거나 필요 없다는 입장"이라며 "경기전망이 불투명하다 보니 대출도 꺼린다"고 말했다.
한은은 분기 단위로 사전한도 부여시 은행의 기술형 창업기업대출 계획 대비 실적평가 결과를 반영, 실적을 채우지 못할 경우 사전한도를 주지 않을 방침이다.
제도 운용이 이처럼 제대로 되지 않자 금융통화위원들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날 공개된 6월 금통위 의사록에서 일부 금통위원은 "통화신용정책수단 정착을 위해 총액한도대출 정비ㆍ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