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월16일] 전시생산위원회


1942년 1월16일,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시장경제체제를 뒤바꾸는 결정을 내렸다. 자원의 배분과 생산 수량, 생산 품목을 좌지우지하는 권한을 지닌 전시생산위원회(WPBㆍWar Production Board)를 발족시킨 것이다. 평소 같으면 어림도 없을 초법적 결단에 누구 하나 이의를 달지 않았다. 일본에 진주만 기습을 당한 직후 보복 여론이 들끓던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WPB의 힘은 막강했다. 생산과 구매에 관련된 모든 부처의 기능이 통합된 권한을 가졌다. 가용자원의 효율적 배분이라는 목표 아래 WPB는 여성용 브래지어에 들어가는 고무의 함량까지 규제했다. 전략용 원자재의 징발권도 부여받았다. 위원장을 맡은 인물은 도널드 넬슨(Donald Nelson). 당시 최대 백화점인 시어스로벅에서 30년간 구매와 통신판매를 담당했던 인물이다. 기저귀에서 조립식 주택, 묘비석에 이르기까지 수십만개 상품을 구매하고 소매점에 분배하며 물류흐름까지 담당했던 그는 WPB의 책임자로 적격이었다. 미국 산업계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넬슨은 군수품 규격 통일에서 최우선 생산 품목 선정, 육군과 해군의 부품 공유화 등 굵직한 과제는 물론 전략물자인 고무와 석유의 배분까지 결정했다. 출범한 지 불과 10개월 만에 넬슨의 조직은 직원 2만5,000명이 일하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획 및 구매기구로 커졌다. WPB가 서류 작성에 쓰는 종이의 양은 대형 신문사에 버금갔다. 미국 제조업이 2차 대전 중 전투용 함정 6,500여척과 탱크 8만6,330대, 항공기 29만6,000여대, 지프와 트럭 350만대, 5,300만대 분량의 화물선, 1,200만정의 소총과 기관총을 토해낼 수 있었던 것도 WPB를 정점으로 하는 전시계획경제와 인재를 적시적소에 활용한 용병술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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